사람은 살아가면서 몇 번의 고비를 맞는다. 그리고 그 고비는 본인의 의지나 신체와 관련한 것이냐에 따라 극복하는 방법이 다르다.
서울에 올라와 김포공항에 근무하던 시절 삶의 둥지를 틀고 신혼생활 하던 기간에 제주공항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당시 맞벌이를 해서 서울과 제주를 주말마다 오고 갈 것인지 아니면 사표를 내고 다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
오랜 고민 끝에 아내의 양해를 얻어 사표를 내고 처갓집에서 월세로 살면서 일 년간 공부해서 총무처 시험에 합격했다. 그렇게 공직에 들어와 근무하다 몇 해 전에 정년퇴직을 했다.
엊그제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를 받아보니 전에 같이 근무하던 여직원이다. 전화기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직원이 요양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단다.
그러면서 최근에 자신의 몸에 일어난 상황을 전해 주었다. 건강검진 결과 정밀검진을 받아보라는 의견이 나왔는데 깜박 잊고 지내다 몇 달 전 가슴 부분에서 멍울이 느껴져 정밀검사를 받아보니 유방암 2기 판정을 받았단다.
직원은 부랴부랴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는 중이란다. 병원에서 의시가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란 말을 듣고 요양병원에 입원해서 근처 산에 등산을 다닌다고 한다.
내가 제주공항에 사표를 내고 맞서 싸운 대상은 실체가 불확실한 시험이다. 시험은 사람을 시험에 빠지게 하는 아편이다. 합격에 대한 보장은 없고 불안과 불확실을 가슴에 안고 공부에 매달려야만 한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처갓집과 장모님 눈치도 살피고 이웃집 아주머니의 피아노소리와도 싸워야 했다. 장모님은 간간이 찾아와서 우리 딸 고생시킨다는 하소연을 묵묵히 들어야 했고, 이웃집 아주머니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피하려고 그 시간에는 잠을 자버렸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여직원이 맞서 싸워야 할 것은 유방암 완치로 목표가 명확하다. 물론 암의 완치는 보장된 것이 없다. 암의 전이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데 암의 전이 여부는 사람이 선택할 수 없다.
또한 자신의 몸과 건강관리에 철저히 하고 주변에 자신의 처지를 최대한 알려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결국 본인의 의지로 극복하려면 몸은 바쳐주어야 하고 그 바탕 위에 정신을 바짝 차려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되풀이해야 한다.
이에 비해 병마와 싸우는 것은 몸은 바쳐주지 않지만 그 바탕 위에 정신력으로 버텨면서 항암 치료를 받아내야 한다.
나는 근 일 년간 시험과 관련한 것과 싸워가며 목적을 달성하여 지금에 이르렀지만 여직원은 병마와 싸워가며 유방암 완치를 위해 극복해야 하는데 기간의 장담을 보장할 수 없다.
사실 여직원은 나보다 더한 인생의 고비를 만난 것이다. 나는 합격이란 목적 달성으로 그에 따른 삶을 누려왔지만, 여직원은 항암 치료에 따른 고통을 온전하게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나는 여직원에게 다른 일은 제쳐두고 복직하고 직장에서 자신의 몸을 최우선에 두고 참고 견디며 이겨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항암 치료 잘 받으며 주변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살아가라고 위로했다.
여직원이 어떻게 병마를 극복할 것인가는 오롯이 스스로 감내하고 이겨내야 한다. 그런 길을 잘 가고 있는지 가끔 전화로 안부나 물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삶에는 늘 고비가 따른다. 그 고비에는 눈물, 슬픔, 고통, 힘겨움 등 무거운 짐이 동반한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 하는 것은 온전히 자기의 몫이다. 고비를 빨리 벗어나는 지름길은 어디에도 없다.
고비를 벗어나는 길은 오직 정도 외에는 없다. 고비가 찾아왔을 때는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답이 나온다. 정도를 버리고 다른 길이나 보다 쉬운 길을 택하면 고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고비가 만난다.
내가 고비를 극복한 것도 동료 직원이 고비를 극복한 것도 정도를 택하여 고통을 감내하며 이루어낸 결과다. 삶의 고비를 만났을 때 보다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은 정도 외에는 길이 없음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