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비가 와서 그런지 구봉산을 오르는 발걸음이 상쾌하다. 자연의 숲은 비가 오기 전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어제 본 숲보다 오늘 아침에 본 숲에서 청량한 기운이 물씬 풍겨난다.
구봉산 숲길을 걷다가 주민센터 뒤편에 이르자 황매화가 장원급제한 어사화처럼 활짝 피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명자나무가 붉은 꽃을 가슴에 끌어안고 꽃을 숨기려는 듯 나뭇잎으로 뒤덮었다.
계절의 시계추는 어느덧 사월 중순에서 하순으로 기울어간다. 이른 봄에 세상을 호령하던 개나리꽃, 산수유꽃, 진달래꽃, 벚꽃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이어서 영산홍과 자산홍과 철쭉류가 피어나는 계절인데 이른 봄과 사월 중순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꽃이 황매화와 명자나무꽃이다. 황매화와 명자나무꽃이 핀 모습이 대조적이다.
황매화는 나뭇잎 위로 줄기를 뻗어 신생하는 가지에서 꽃이 송이송이 피었고, 명자나무꽃은 나뭇잎 안에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도록 가린 듯이 소담하게 피었다.
황매화는 외향적인 사람의 성격을 닮은 듯이 꽃이 나뭇잎 밖을 향해 피었고, 명자나무는 내성적인 사람의 성격을 닮은 듯 꽃이 나뭇잎과 어울려서 피었다.
신생의 가지 끝에 몽글몽글 핀 황매화는 자신이 피운 꽃을 남보라는 듯 자신의 미를 한창 뽐내고, 붉게 핀 명자나무꽃은 자신이 피운 꽃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나뭇잎을 헤집어 봐야 꽃이 보일 정도다.
그런 탓에 황매화는 사람들이 나무 이름과 꽃을 잘 아는 것 같고, 명자나무꽃은 사람들이 나무 이름과 꽃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두 꽃이 핀 모습을 바라보고 어떤 꽃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아마도 황매화처럼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명자나무꽃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내적으로 보듬어 안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밖으로 드러내고 드러내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의 문제이지 그것을 바라보고 어느 것이 낫다 낫지 않다 하는 판단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황매화처럼 자신의 미를 외적으로 뽐내더라도 내적인 향기를 갖추고 조화를 이루면 아름다운 것이고, 명자나무꽃처럼 자신의 미를 내적으로 끌어안더라도 외적인 향기와 조화를 이루면 아름다운 것 아닐까.
누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는 각자 살아온 방식과 미를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지 사람의 인식이 개입될 여지는 없는 것 같다.
지나가는 과객인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 듯이 송이송이 매달린 황매화가 바람에 흔들거리며 자신을 보아달라고 유혹하고, 나뭇잎 안으로 숨긴 붉은 명자나무꽃은 수줍다는 듯이 알아서 판단하라며 바람결에 숨는다.
봄이 익어가는 계절에 두 미인을 만나서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나는 잠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황매화 곁에 다가가서 귓속말로 명자나무꽃보다 네가 더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뒤짐을 지고 물러나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척하다 그 옆에 있는 명자나무꽃에 슬며시 다가가서 귓속말로 황매화보다 네가 더 아름답다고 말해 주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발길을 돌렸다.
아마도 내가 꽃에게 귓속말로 전한 것을 꽃들은 서로 듣고도 모른 척할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가 자신이 더 아름다운 삶과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