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라나라나
"어 난데.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전화기 너머로 늘 까불대던 신랑의 목소리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차분함이 묻어났다.
"응. 왜?"
불안감이 엄습해왔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나 손가락 잘렸어. 지금 응급실이야."
싱가포르 시간 오후 한 시였다. 보통 때 같으면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너무 놀랐지만 옆에 큰 아이도 있었고, 손가락 절단 시 빠른 시간 안에 접합만 잘하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현재 상황을 물어보았다.
"지금 의사 선생님 만났고 수술 기다리고 있어. 접합은 너무 갈려서 불가능하대."
상황은 이러했다.
열 두시, 점심시간이 되었고 동료들은 밥을 먹으러 가자고 신랑을 불러내었다.
신랑은 엔지니어로 오피스와 랩을 오가는 일을 한다.
그날 그 시각 그는 랩에 있었는데 모두가 나가면서 제일 마지막으로 따라나서는데, 뭔가에 홀리듯
장비 하나의 이상한 무엇이 눈에 들어왔다. 확인해 말아? 몇 초의 고민.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라도 있었으면 막아줬으련만, 아무도 그를 막아주지 못했다.
장비에 다가가 장갑을 낀 손을 뻗어 확인하는 순간 아차 싶었지만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장갑을 벗었을 때 이미 늦었음을 직감했다. 동료분들이 앰뷸런스를 불렀고 급하게 피가 나는 손가락을 동여 메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의사 선생님은 가서 잘린 손가락을 찾아오라고 동료분에게 의료 처치 봉투를 들려 보냈고,
사색이 된 동료분은 바닥에 뒹굴던 손톱이 달린 피범벅 된 왼손 네 번째 한마디를 찾아내서 달려왔다.
그나마 왼손이어서 다행이라고 하고 싶지만, 우리 신랑은 왼손잡이라는 함정이..
해외 살면서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은 바로 이런 때이다. 누가 다쳤을 때, 아플 때, 잘 알지 못하는 정보를 검색해야 하고, 물어볼 곳이 없는 막막함.
아들과 나는 십 분간의 짧은 시간 동안, "잠깐만!! 수술하지 마!"를 외치며 미친 듯이 검색에 들어갔다.
아들은 또 구글로, 나는 네이버로, 그러다 어차피 접합이 안될 거면 가장 성형을 잘하는 쪽으로 가야 하고,
Hand Surgery 전문 의사들이 따로 있는 걸 발견,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 운 좋게도 한 분과 연락이 닿았다.
"오빠! 멈춰!! 거기서 수술하지 마. 기다려 지금 갈게!!."
"지금 빨리 수술실 들어오라는데?"
"안 돼. 안 한다고 그래. 딴 데 가자!"
그곳도 싱가포르 국립 병원으로 꽤 크고 좋은 곳이었지만, 싱가포르는 의료비가 아주 비싸기 때문에
사립 병원들과는 실력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메이저 사립병원들에 실력 있는 의사들이 모이듯이.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운전대를 잡았고, 평상시엔 트럭이 앞에 있어도 추월 안 하고 얌전히 잘 따라가는데 마구 추월을 하며 레이싱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먼저 오빠 안녕하고 갈 뻔했다. 누군가 사고 났다는 소리를 들으시면 택시 타시길 권합니다..
저 멀리 그가 보였다.
한 손은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잘린 손가락이 든 봉지를 든 채.
좀 어이없지만 우리는 웃었다.
"아니 이게 무슨 시츄에이숀이니."
"그러게."
"아. 그 봉지... 오빠 .. 정말..오마이갓이다."
"그러게. 나 이제 기타 못 치는 건가."
"기타보다 음..직장 다닐 수 있을까?"
"그러네.."
사립병원 응급실까지 십 분 정도 걸렸다.
"오빠 길이는 짧아져도 손톱은 꼭 살려달라고 말해보자. 손톱이 없으면 이상하드라."
"그래."
응급실 앞 주차장이 한 자리 있는데 얼른 세웠더니 거기는 안된다고 빼란다.
그때까지 멀쩡했던 나는 갑자기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며
"마이 허스번드. 핑거. 컷컷.. 엉엉."
하니 그분이 놀라서 그냥 세우란다.
그리고 응급실에서 싱가포르 최고 핸드 서전이시라는 그분을 만났고, 한 번 더 간절함이 쏟아져 나왔다.
"플리즈. 메이크 프리티. 엉엉."
나의 임팩트 있는 짧은 영어는 다 통했다.
그분은 씨익 웃으시면서 순식간에 A4지에 어떻게 수술을 할 건 지 그림으로 그려주셨다. 기역 자로 꺾인 뼈를 자르지 않고 세운다음 손가락 한 가운데를 길게 절개해서 살을 최대한 끌어모으고 당겨서 위로 한 마디를 새로 만들 거라고.
손톱은 살릴 수 없지만,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고. 프리티 하게 해 주겠다고. 약소옥~.
신랑 옆에 있고 싶었지만, 둘째 아이를 픽업한 다음 저녁을 챙겨주어야 했다.
다시 달달 떨리는 손으로 핸들을 잡고, 집까지 왔다.
신랑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혼자 차가운 수술대에서 전신마취에 들어갔고
나는 아이들과 집에서 평상시처럼 저녁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이면 되겠지 싶었는데 수술은 안 끝나고 있었다.
'아이고 내가 괜히 옮기자고 해서 일났나보다. 옮기느라 적절한 타이밍을 놓쳤나. 마취에서 못 깨어났나.'
자책했다가 떨었다가 마음속으로 최악의 시뮬레이션을 몇 번 돌리고 몇 번 기절할 뻔했는지 모른다.
아이들 때문에 뛰쳐나가지도 못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병원에 전화를 계속 걸어 확인하는 수밖에.
자정 넘어 신랑이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말에 그제야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 가보니 여름 나라라 그런지 고대 로마시대 옷차림처럼 거의 옷을 다 벗겨놓고 있는 신랑을 발견, 얼굴이 편해 보였다.
살아 돌아온 신랑이 너무 고마웠다.
집에 오니 병원에서 입혀준 팬티가 일회용 삼각 여자 팬티처럼 생겼는데 그마저도 이뻐 보였다.
우리 이 날의 기쁨을 잊지 말자. 기념으로 몇 달 고이 간직해줬다.
혼자 샤워할 수 없는 신랑을 위해 매일 구석구석 신랑 몸을 아이 씻기듯 씻겨주면서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맙다고 내가 이제 정말 잘하겠다고 하트를 마구 날리며 맹세했다.
나를 잘 아는 신랑은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면서 아이고 며칠이나 갈까. 하면서도 좋아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켜주셨다. 몇 개월간 물리치료와 통증을 견뎌가며 잘 버텨준 손가락은 봉긋하게 살이 올라왔고 뻣뻣했던 마디가 구부러지기 시작했고 결국 손톱마저 새로 꽃 피우고야 말았다. 손톱이 났다고 흥분하니 선생님은 손톱이 날 수 있는 부위를 최대한 살리긴 했는데 운이 좋았다며 씨익 웃으셨다.
왜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건지.
열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두 다리로 걸으며 두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두 귀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내 입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는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자꾸 까먹는다.
얼마 전에서야 신랑은 다시 기타를 꺼내 들었다.
약간 짧아진 손가락 탓에 자꾸 줄을 놓쳐서 소리가 끊겼지만,
내 귀엔 캔디, 그렇게 달달할 수가 없는 음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