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라나라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장난이 심한 남자애가 있었다.
그 녀석은 여자애들을 정말이지 너무 괴롭혔는데, 나는 하필 키도 작고 약해서 더 자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그 애보다 키가 컸던 한 여자애는 그 애가 괴롭힐 때마다 용감히 맞붙어 복도에서 뒹굴고 싸웠는데, 그걸 지켜보는 내 가슴은 콩닥거리면서도 얼마나 속이 다 시원하고 그 친구가 멋져 보였는지 모른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또 그놈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였다.
그때 엉덩이에 뾰루지가 나 있어서 잘못 앉기만 해도 불이 난 것처럼 따갑고 아프기도 했는데 하필 그 부위를 걷어 차인 것이다.
나는 엉엉 울었고, 사실 조금 더 오버해서 집에 와서도 아프다고 학교 가기 싫다고 마구 울었다.
언제 또 공격당할지 모를 긴장감과 두려움에 영영 그 남자애로부터 숨고 싶었다. 물론 냉정하신 오마니께서 조금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엄마는 보통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라고 딱 잘라 말하시는 스타일이셨는데 그날만큼은 다르셨다.
그럼 학교 가지 말까.
"걔는 왜 그러냐. 엄마가 막 혼내줄까?"
전혀 예상치 못한 엄마의 대답에
'엥? 우리 오마니가 와 이라시지? 응, 이라고 해도 되나?' 동시에
'진짜 학교를 못 가게 되면 어쩌지?' 두 가지 복잡한 마음으로 일단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엄마는 아이 셋을 키우시고 일도 하시느라 늘 바쁘셨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여유로워 보이셨다. 잠시 실직 상태셨나..월차를 내셨나..
나에게 무릎베개를 해주시던 그날 오후, 엄마의 얇고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쏟아지던 따스한 한낮의 햇살까지 기억난다.
그건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어릴 적 엄마의 기억 중 최고의 기억이다.
그때 엄마는 어린 내 마음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읽어주셨던 것 같다.
지금이야 육아에 관한 책과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금쪽같은 내 새끼의 마음을 어떻게 읽어줘야 하는지 세세한 예문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 당시 부모님 세대는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으니 그저 본능대로 자식들을 대하셨을 것이다.
물론 엄마는 선생님께 전화를 하거나 그 애를 혼내주지도 않으셨다. 그저 내 뾰루지에 약을 발라주시던 게 전부인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단 하루였지만, 위로받은 내 마음은 신기하리만큼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도망가고 싶었던 날,
엄마의 치맛폭에 숨어도 된다는 안도감을 받은 나는, 바로 그다음 날 씩씩하게 눈물을 닦고 학교에 갔다.
가끔 그날이 떠오르면,
학교에서 속상해서 온 아이들에게 '왜 그랬어? 그럼 안되지. '라고 말하는 나를 반성한다.
(그러나 쉽게 고쳐지지 않고 여전히 그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현실 육아..)
'속상했겠다. 걔 진짜 나쁘다.' 라며 일단 아이의 감정을 먼저 읽어주고 아이의 편이 되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훗날 아이들이 자라 세상에서 숨고 싶은 날이 올 때,
든든하고 따스했던 엄마의 치맛폭을 떠올리며 '그래, 이까이 꺼 뭐.' 씩씩하게 눈물을 닦고 나아갈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