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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라나 Dec 16. 2021

너 자꾸 내 딸 힘들게 할래

by 라나라나

 

첫 애를 낳았을 때이다. 태명은 사랑이었다.

오마니는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수원으로 올라오셨다.

나는 빽빽 소리도 안 지르고 평화롭게 애를 낳고 싶었지만 상황은 내 마음과 같이 흘러가지 않았다.


사랑이는 스스로 나오기를 거부했고, 얼굴을 자꾸 반대쪽으로 향해서 거의 24시간을 진통하고

자궁문이 다 열리고도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했다.

고로, 자연분만의 통증도 다 느끼고, 결국 수술을 한 셈이다.

산후조리원에 예약되어 있었지만 제 발로 걸어 다닐 상태도 안되어서 병원에 며칠 더 입원하고 엄마가 그냥 집에서 돌봐주시기로 하셨다.


그때부터 엄마는 미역국을 끓이고 집안일에다가 24시간을 품에서 재워야 했던 사랑이를 돌봐주시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뒤뚱대는 막내딸까지, 이래저래 할 일이 넘치셨다. 아빠도 바로 올라오셔서 아이 보는 일에 합류하셨지만, 요 작은 인간 하나 돌보는데 드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했다.

유난히 잠을 안 잤던 사랑이는 온 가족을 지치게 만들었다가 웃게 했다가 하였다.


대전에 계시던 외할머니도 수원까지 애를 보러 오셨다.

그러다 우리가 더 계시고 가시라고 말씀드리자, 흔쾌히 더 머무시겠다고 하셨다.

사랑하는 큰딸 우리 오마니 옆이 좋으시니까.


할머니는 증손주를 보시면서 너무나 흐뭇해하셨다.

아직도 할머니의 미소가 생각난다. 항상 사랑이를 안으며 "아고. 보름달처럼 둥그러니 이뿌다." 하셨다.

엄마 아빠는 아이를 안아주시다가 신랑이 오고 저녁을 먹고 나면 아이를 우리에게 넘겨주셨는데

그때부터 새벽녘까지는 늘 공포스러웠다.

정말 아이는 등에 센서 백만 개, 내려놓으면 깨고 또 깨고 해서 거의 신랑과 번갈아가며 날을 샜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집안일하느라 피곤했던 엄마는 곤히 잠드시고,

새벽 여섯 시 무렵이면 아빠는 밤새 잠 못 잤을 딸이 안쓰러워 늘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사랑아~하고 불러주셨다.

그럼 나는 아이를 안고 앉아서 졸고 있다가 아빠에게 얼른 넘기고 다시 기절하곤 했다.

그렇게 기절하고 아침에 부스스 일어났는데 거실에서 엄마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사랑이 요 녀석, 너 자꾸 우리 딸 힘들게 할래?"


엄마가 계속 찡찡대는 아이를 어르면서 중얼거리셨다.


"밤이면 잠을 자야지. 통잠을 자야지. 우리 딸 힘들어~. 밤에 잠도 못 자고. 느그 엄마 아프면 우째. 내 딸 아프면 우째."


사랑이는 반성하는 기력이 저언혀 없었지만, 할머니의 사랑과 걱정이 섞인 목소리 때문인지 할머니 눈을 피해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한 달째 힘든 산후조리에, 대가족이 되어버린 집안 식구들 밥을 하느라 지친 엄마가 소파에서 졸고 있었다. 방에 계시던 외할머니가 거실로 나와서 바닥에 아기 요를 깔고 그 위에 아이를 눕힌 채 요를 위아래로 밀어주고 계셨다.

할머니도 돕고 싶으신데 아기를 안기에는 체력이 안되시니 어렸을 적 다섯 아이를 키우실 때 요령으로 어떻게든 돌봐주러 애쓰셨다.


그래도 자꾸 사랑이가 찡찡대자 졸던 엄마가 잠이 깰락 말락 하셨다.

할머니는 곤하게 잠든 엄마가 깰까 봐 눈치를 보시며 사랑이에게 속삭이셨다.


"사랑이. 너 자꾸 우리 딸 힘들게 할래?



우리 딸 힘들어. 밥도 허구 애도 보구 몸 다 망가져. 어여 자장 자장 자장혀~~"


사랑이는 증조할머니의 따가운 레이저와 나지막한 협박에 잠시 움찔했을까.

자꾸 돌아가며 자기 딸들을 걱정하는 할머니들 목소리를 들으며


'아이고 세상에 태어나보니 다들 자식새끼 사랑이 끔찍하시구만유.' 피식 웃었을까.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다들 자기 자식이 제일 걱정되고 소중하구나.

나는 얼른 힘들어 보이는 두 할머니 사이에서 눈칫밥 먹는듯한 내 새끼를 데려다가 품에 안으며 귀에다 속삭였다.


"사랑이. 네가 아무리 잠을 안 자고 엄마를 괴롭혀도, 엄마는 널 사랑해."



물론 여러 명이 돌아가며 봐주던 아름다운 시절이라 저렇게 예쁘고 고운 말이 나왔다.


다들 내려가시고 불과 며칠 뒤,

"사랑이! 너 왜 이렇게 잠을 안 자? 나 괴롭히려고 태어났어? 너 자꾸 나 힘들게 할 거야? "


째려보고 화를 내며 모성은 오간데없이 자기애 넘치는 엄마로 180도 변신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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