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라나라나
주말 저녁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러 이스트코스트 파크를 다녀왔다.
싱가포르의 동쪽에 위치한 이 파크는 해안선을 따라 아름답게 길게 이어진 코스로 유명하다.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저녁 8시쯤 갔는데 웬걸, 휴가지에 피서 온 듯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주차를 하고 자전거 대여하는 곳까지 걸어가는데 다양한 풍경들이 들어왔다.
왼쪽 한편에 자리 잡은 커다란 놀이터엔 코로나 시국에도 아이들이 정글짐에 기어오르고 구름사다리와 그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다양한 인종의 부모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비슷해 보이는 수많은 아이들 중 본인의 아이들을 찾아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자전거 도로엔 넘쳐나는 자전거들, 대여용으로 나온 마차같이 생긴 가족용 자전거들이 느릿느릿 지나가고 그 안에선 부모들이 열심히 발을 굴리고 아이들은 가짜 핸들만 잡은 채 신나게 띠리링 벨만 울려대고 있었다.
싸이클링 하는 사람들, 인라인 타는 사람들, 스케이트 보드까지 모두가 늦은 밤 자전거 도로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른쪽엔 검은 밤바다가 보이고 몇 개의 어선들일까.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바다 쪽으로 모래사장이 이어지고, 사람들은 중간중간 돌의자에 삼삼오오 모여있거나, 모래사장에 자리를 깐 채 검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파제 위쪽으로도 사람들이 위험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두려움을 모르는 젊은이들이겠지.
인도 전통옷을 입으신 아주머니 둘과 젊은 남자 둘이 음악을 틀고 춤을 추고 있었다. 손가락 끝을 우아하게 까딱거리며 돌리시는데 음악이 잘 안 들리는데도 어떤 가락인지 알 것만 같았다.
깔깔깔 웃음이 넘쳐났다. 밤바다를 앞에 두고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자전거 대여점에 도착했을 때 역시 북적거렸다.
반납하러 온 사람들과 자전거를 빌리는 사람들 사이사이를 누비며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자전거를 체크하고 있었다.
우리는 마차같이 생긴 커다란 자전거 하나와 큰 아이를 위해 일반용 자전거 하나를 빌렸다.
주말에 두 시간 렌트하면 한 시간 공짜예요. 이런저런 문구들이 카운터 직원 뒤쪽 벽으로 더덕더덕 붙어있었지만 우리는 그저 "One hour, please." 외쳤다.
직원분이 이런저런 주의 사항을 말하시며 보증금으로 카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슬쩍 보니 gocycling이라는 이름과 공원 전체에 여러 같은 대여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부에서 운영하는 듯한 느낌이라 불안감을 접고 EZ link라는 교통카드를 하나 맡겼다. 그리고 결제를 하려 했더니 NETs 카드나(직불카드) 현금만 받는다 했다.
아뿔싸. 한국 다녀온 사이 카드의 유효 기간이 지났고 현금이 없었다. 어떡하지?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 어물거릴 수가 없는데, 빠져나올까 눈치를 보다가 순간 계좌이체가 생각났다.
혹시 페이나우 (핸드폰 번호로 계좌 이체하는 시스템) 가능해? 그제야 직원은 전화번호가 적힌 QR코드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진작 말해주지. 종종 싱가포르에서 마주치는 일이다.
이런 순간에는 한국이 그립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라면 이미 먼저 물어봐줬을 텐데. 한국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돼서 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에 한국 가서 제일 놀란 건 한국분들의 빠릿빠릿함과 영민함, 그 일처리 속도였다. 인천 공항부터, 동사무소에 가도, 은행을 가도, 내가 하나를 물으면 속사포처럼 열 개를 쏟아내시는데 동남아 속도에 맞춰 살다온 나는 듣는 귀도 느려져서 잘 못 알아들어 두세 번 묻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리바리한 나를 못 참으시고
" 제가 앱 깔아드릴게요. "
" 그럼 이것 말고 혹시 이 서류도 필요하실까요? "
"신분증 주세요"
말이 마치기도 전, 뭔가를 타닥타닥 작업하고 계셨다.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도 어쩜 그리 빠릿빠릿하신지. 내가 느림보 거북이처럼 느껴졌다. 돌아서서 나올 때마다 ‘이야. 우리나라 최고다' 할매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한국에 있으면 몸이 빨라지고 생각도 더 민첩해진다. 하지만 싱가포르에 돌아오면 다시 몸은 느려지고 이 나라의 속도에 적응한다. 그렇지 않고 ‘대체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느려 터진 거야.’ 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되므로. 어디든 몸담고 있는 곳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야 맘이 편하다.
그렇게 두 대를 빌려서 나왔다.
수지를 가짜 핸들이 달려있는 앞쪽의 조그만 좌석에 앉혔다.
페달을 밟으니 조금 습하지만 시원한 밤바다가 불어왔고, 수지는 맨 앞에서 그 바람을 맞으며 핸들을 요리조리 돌리고 띠링띠링 벨을 울려가며 그렇게 신나 할 수 없었다.
덩치가 큰 자전거를 운전하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아주 느린 속도로 달리는데도 아무도 빵빵거리지 않고, 쉭쉭 알아서 피해 간다.
최대한 서로를 배려해주고 손가락질을 하거나 언성을 높이지도 않는 여유있는 그들.
내가 좋아하는 싱가포르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도로 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과는 좌우가 반대이지만, 이들의 급하지 않고 젠틀한 운전 덕에 운전 경력이 짧은 나도 도로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위험한 순간 외엔 거의 클락션 울리는 소리를 들어볼 일이 없다.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저 멀리 걸어오는 나를 위해 미리 멈춰 서주는 차들 때문에 서둘러 뛰어온 적도 여러 번 있다. 도로교통은 선진국답게 너무나 잘되어 있고, 도로 역시 어디나 깨끗해서 한국보다 세차를 훨씬 덜해도 되지만, 싱가포리언들은 세차도 정말 열심히 한다.
한국은 셀프 세차 전용 공간이 많지만, 여기는 저렴한 가격에 입주해서 집안일을 돕는 메이드들이 있어서 그들이 대부분 주말에 손세차를 한다.
운전을 무서워하는 분들은 싱가포르에서 배우세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큰 아이는 혼자 쌩 달리다가 속도를 늦춰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다가 이내 마차처럼 느릿한 우리의 속도가 답답한지 앞질러갔고 , 심심하면 다시 우리 옆에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이 도로 위가 인생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수지는 우리가 발을 열심히 굴러주는 자전거 위에서 즐겁게 힘을 안 들이고 세상 구경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오빠처럼 힘차게 제 발로 페달을 구르며 혼자 세상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러다가 심심하거나 외로우면 다시 부모 옆으로 다가오고, 또 지루해지면 세상의 기류에 맞춰 박차고 나아갈 것이다.
이제 빠른 속도로 살아가는 나이는 지났다. 그게 좋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저절로 느려지겠지만, 그 속도에 맞춰 우리는 우리의 삶을, 아이들은 아이들의 삶을 살아가겠지.
뒤에서 앞서 나가는 아이들을 응원하되, 우리도 결코 페달 밟는 일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의 속도로 그렇게 함께 또 따로, 조화롭게 살아갈 것이다.
이 아름다운 적도의 밤이 선물 같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