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나라나 Dec 23. 2021

천사가 살고 있다

by 라나라나

처음 대학을 들어갔을 때 일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기숙사에 들어간 친구와 나는 서울 구경을 한다고 수업이 없는 오후와 주말마다 시간이 나면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었던 우리는백팩도 빨강파랑으로 맞추고 신발도 똑같은  사서 신고 거리를 활보했다.

생각해보면  촌스러웠고 해맑았다.

그날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뛰어나와 버스를 탔다.

마침 친구는 용돈을 집에서 보내주셔서 지갑도 두둑했다.

우리는 신나게 버스 내리는  가까운 쪽에 자리 잡고 앉아서 수다를 떨며 갔다.

그리고 종로 어딘가에서 내려 걷고 있는데 순간 친구가 당황해했다.

어? 어? 지갑이.. 없어. 


"어떡해.. 차에 흘렸나 봐.."

이미 버스는 떠났고우리는 버스 차량 번호판도 보지 못했다.


우리가    있을까

버스는 서울 시내 곳곳을  돌고 가는 터라 종점까지 가면 이미 지갑도 없어진  아닐까

도로가 워낙 많이 막혀서 택시를 타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지금처럼 버스 노선도를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도 없었던 시절이라 우리는 버스 정류장 한쪽에 붙은 노선도를 들여다보며 대략 어디쯤으로 가는지 훑었다우리가 버스에서 내려 가본  있는 알만한 곳으로다가 목표를 찍고 전철이 버스보다 빠르겠지 싶어서 냅다 전철역으로 뛰었다

전철에서 내내 마음을 졸이던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정신없이 뛰어올라가서  버스가 서는 정류장에 대기했다.

그런데 느낌이 싸했다.

바로 우리가 탔던 번호의 버스가 뒷모습만 남긴  떠나고 있었다.

시간상 아무래도  버스였던  같은데우리는 아쉬워하며 종점까지 가야 하나 봐. 하고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기.. 학생?"


"아까 혹시 00 버스  학생들 맞지?"

버스 정류장에서 유심히 우리를 바라보시던  아주머니가 말을 건네셨다.

"맞는데요?"

" 지갑도 혹시 학생들  아니야?"

오마나우리는 숨이 멎는  알았다.

아주머니 손에  지갑은 우리가 오매불망 찾고 있던 친구의 것이었다.

" 아주머니맞아요너무 감사합니다어떻게 이걸?"

"내가 학생들 뒤에 앉아 있었거든가방 색깔이 알록달록하니 귀엽다 생각했는데.

내리고 나서 내가  자리로 옮겼는데 바닥에 지갑이 있더라고.

열어보니 학생증 얼굴이  학생인  같은데 이걸 여기 두면 누가 집어갈까 싶어서

경찰서에 보내야겠다 하고 들고 내렸지."

그리고  기적 같은 말을 덧붙여하셨다.

" 사실 잠시 딴생각하느라  정거장   내려서 다시 버스 타려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알아?

그런데 저쪽에서 학생들이 헐레벌떡 뛰어오길래 나도 너무 놀랐어."

어쩜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건지.

우리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아주머니너무 감사합니다진짜 오늘 용돈도 받아서 돈도 많았거든요.

잃어버린  알고 정말 아찔했는데아주머니 복 받으실 거예요엉엉.

너무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요앞으로는 조심해서  챙기고 다녀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흐뭇해하시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조폭 형님들을 모시는 동상들처럼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있다가 미친 듯이 팔짝팔짝 뛰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어머어머 웬일이니! 기적이야 기적길거리 한복판에서 호들갑을 떨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아주머니 천사 아니실까?"

" 나도 어렸을  물에 튜브 타고 둥둥 떠내려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구해주셨거든근데 고맙다고 돌아보니  계셨다."

"우리 언니 친구 동생 같은 반애는 어릴  기차역 선로 앞을 지나는데 어떤 아줌마가 뒤에서  잡아당겼는데  순간 기차가  지나가서 죽을 뻔했다가 살았대근데  아줌마가  보이더래."

우리는 어디선가 들은  있는 기적 같은 이야기들언니의 친구의 사돈의 팔촌친구의 친구 동생 이야기까지 거들먹거리며 오늘의 기적도 그중 하나인 베스트 전당에 올렸다.

학교로 돌아가 우리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신기해하며   이야기를 날랐을 것이고누군가 기적 같은 일을 맛보았을 때  이야기 사이에 우리의 지갑 이야기도 전해졌을 것이다.

삶에서 마주친 작은 기적 같은 순간들은 알고 보면 천사 같은 누군가의 손길들이었다.

잃어버린 지갑이 경찰서를 통해 돌아왔을 때도 있었고,

놀이공원에서 놓쳤던 아이의 손을 잡아주신 분들도 계셨다.

허둥거리며 무언가를 흘리고 앞에 가던 사람에게 

"저기요이거 흘리셨는데요."라고 건넨 장갑  짝이나 종이 조각이  사람에겐 상상 이상의 소중한  무엇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당신도 우리도 역시 누군가에겐 천사였을지도.

서로가 서로에게 작은 기적을 베풀며 본인의 정체도 모른 채 천사들이 살아가고 있다 지구 곳곳에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한 박자 느리게 살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