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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라나 Apr 07. 2022

운을 주으러 갑니다.

by 라나라나

 

금요일이라 일주일의 긴장이 풀린 밤이었다.

아이들도 각자 TV와 컴퓨터 앞에 앉고 나도 오래간만에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으로 그간 금욕했던 온라인 샤핑을 하고 있었다.

신랑이 다가왔다.

"수란아. 이것 좀 봐."

유튜브 화면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우리 신랑은 스포츠를 무지 사랑하는 사람이다. 혼자 유튜브 밖 관중석에서 최근 경기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나간 시대의 명경기들까지 매일 다시 보기 하며 열광하고 안타까워하고 박수치며 감동하는 스포츠 열혈팬이시다.

 

아니나 다를까 스포츠 선수 이야기였다.

'아... 나 온라인 쇼핑해야 하는데..' 하고 반대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리려는 찰나,

어라? 삼삼하네? 신랑이 틀어주는 첫 화면 선수가 참 잘 생겼길래 저절로 고개가 원위치되었다.

"누구야?"

"요즘 정말 유명한 일본 야구선수야. 오타니 쇼헤이라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데 장난 아니다. 잘생겼지?"

@pinterest


이런 건 또 자세히 보아야 한다. 나는 벌떡 일어나 경건한 자세로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했다. 

190이 넘는 장신에 어깨는 그저 광활한 태평양처럼 떡 벌어져 있고, 머리는 굉장히 작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헬맷이 벗겨질 정도로 머리가 작고 어깨는 심하게 넓어서 주위 모든 사람을 어좁이로 만든다고 한다.)

이 비율이 아시안의 체구로 가능한 것인가

보면 볼수록 반짝이는 눈, 선한 인상,

'아이고 뉘 집 아들이여. 반듯하니 잘생겼구먼.' 할매스런 감탄이 나올만한 비주얼이었다.

 

@pinterest


"투타겸업 유일한 선수다."

"그게 뭐야?"

"투수와 타자가 동시에 가능한 선수라는 거지. MLB 역사상 베이비 루스 이후 처음 나온 선수야."

" 야구 선수면 다 그런 거 아니야? 치고 던지고?"

갑자기 할 말을 잃은듯한 신랑은, 어디서부터 이 운동 무지렁이에게 설명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눈치였으나 이내 짧게 잘라 말했다.

"어. 다 안 그래. 그렇게 못해."

"아~. 그래서 유명하구나. 잘 생기고."

"근데 얘가 인성도 좋아."

"그걸 어떻게 알아?"

 

신랑은 말없이 플레이 버튼을 눌러주었는데 화면 속 오타니 쇼헤이는 이십 대 슈퍼스타 선수인데도 구장 내의 쓰레기도 줍고 다니고 부러진 상대방의 배트를 주워 배트 보이에게 가져다주고 심판이나 팀원들 모두에게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때 작성했다던 만다라트를 보여주는 데 꽤나 인상적이었다.

몸만들기, 제구, 변화구, 멘털 관리 등 여러 목표 분야 사이에 운의 영역이 있었고, 그 운의 영역에는 

쓰레기 줍기와 인사하기, 야구부실 청소 등이 적혀 있었다.

 


@pinterest


그리고 인터뷰하는 기사가 떴다.

 

"왜 쓰레기를 주우시나요?"

그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

"저는 다른 사람이 버린 운을 줍습니다."

 

. 저런 마음으로 쓰레기를 줍는 젊은이라면 성공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발밑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며 줍는 사람과 그것을 남들이 떨어뜨린 운이라고 생각하며 줍는 사람.

같은 행동을 해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마음가짐이 달라지면 인생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깨달은 게 신기했다.

 

@pinterest



얼마 전, 친구가 타로 카드를 보았는데 마지막에 덧붙여 화장실 청소를 열심히 하라고, 그럼 집안일이 잘 풀린다고 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을 땐 화장실 더러운 거 우찌 알았지 둘 다 킥킥 웃었지만 그날 이후로 친구는 화장실 청소할 때 마음 가짐이 어떨까. 청소할수록 집안일이 잘 풀리는 상상을 하며 그 전보다는 좀 더 기분 좋게 정성을 들여하고 있지 않을까.

 

반복되는 일상에서 내가 마음가짐을 달리해야 하는 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귀찮은 다림질을 할 때 상사에게 시달려 구겨진 남편의 마음이 한 뼘 펴질 거라는 생각, 현관 앞 먼지를 쓸면 좋은 소식들이 집 앞으로 찾아올 거라는 생각, 평범한 일들에 조금 엉뚱한 의미를 부여해보면 손놀림에 작은 기쁨이 묻어날 것만 같다.

 

실천 편으로 주말에 아이들과 공원으로 운동하러 나가서 오타니 쇼헤이 이야기를 해주며 여기저기 널린 운들을 줍자고 말해봐야겠다.


오타니쇼헤이@라나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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