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기로 했다(13)
구름이 몰려들었다. 확실히 장마의 시작은 구름의 무게부터 달랐다. 빛의 조도가 현저히 줄었다. 공기 중에 섞인 물의 냄새가 달랐고, 늘 보던 풍경들이 모두 변해버렸다. 둔탁한 몸집의 구름이 고인 하늘. 그 아래를 걷다 보면 비구름이 가라앉다가 흐르다가 나에게까지 스며들어 나를 또 다른 비구름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맑을 때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되었다. 높은 곳에서 여유롭게 흐르던 구름이 잔뜩 내려와 멈춰있었다. 그런 하늘을 보니 장마가 일 년 내내 혹은 평생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언제든 후드득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빗방울이었고, 언제든 후드득 내 안에서 우울을 뿌려댈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기회였다. 평소에 보지 않았던 것을 볼 기회였고, 생각할 기회였다. 나는 학원에 일찍 도착한 2학년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창문 열고 밖을 봐봐.”
두 아이가 창문으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다. 학교에서부터 봤을 바깥 풍경이 뭐가 그리 신기한지 의자까지 갖다 놓고 구경했다.
“하늘 좀 봐봐. 구름도 봐.”
“선생님, 구름이 없어요.”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며, 아이들은 평소에 보던 그 구름이 아니라며 구름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난 후,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켜야겠다고 결정했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아이들을 그 좁은 창문 앞에 세웠다.
“하늘을 보세요. 구름도 보고, 나무도 보세요.”
아이들은 그 말에 따라 머리를 움직였다.
“신호등도 보고, 횡단보도도 보세요.”
“선생님, 횡단보도가 피아노 같아요.”
“사람들을 보세요. 자동차에 탄 사람도 보고, 표정도 봐요.”
“선생님, 휴대폰을 하고 있어요. 저런 차는 타면 안 돼요. 사고 나요.”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안 보이는 것도 생각해 봐요.”
“비둘기가 없어요. 왜 없지?”
아이들은 그 작은 창문으로 본 것들을 원고지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묘사를 가르쳐도 헷갈려하던 아이들이 단번에 묘사를 해냈다. 늘 쓰던 단어가 아닌 단어들이 튀어나왔고, 늘 하던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이 나왔다. 평소에 그토록 끄집어내려 해도 잘 안되던 자신 만의 생각을 펼쳐놓았다.
600자의 글자를 쓰기 위해 아이들은 몇 번이나 창가로 가서 밖을 보았다. 장마로 인해 어둑해진 풍경을 관찰했다. 물방울이 튀긴다며 까르르거리면서 창밖을 보았다.
처음 보는 먹구름을 보고, 바람에 휘청이는 나뭇가지의 끝을 보며 춤추는 나무라고 손으로 가리켰다. 2층에서 내려다보니 우산들이 알록달록 하게 잘 보인다고 좋아했다.
정말 작은 창문이다. 세 명이 서면 비좁아서 제대로 볼 수도 없는 창문 하나를 통해 아이들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다. 늘 보던 것이 문제집이고 시험지고 휴대폰인 아이들에게 작은 창문이면 충분했다.
거대한 잿빛의 코끼리 같던 마음이 아이들이 쓴 글을 보는 순간 물방울로 변했다. 물방울들이 강으로 바뀐 차도를 두드리는 것처럼 나를 두드렸다.
이 시간들이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남아주면 좋겠다. 세상을 볼 줄 알고, 그래서 타인을 볼 줄 알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아이들이 되어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맞춤법이 조금 틀리고 띄어쓰기가 안 돼서 몇 번을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아이라도 괜찮다. 자기가 쓴 글을 통해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던 것을 꺼내어 확인하고 웃음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
다음 주에는 5학년과 6학년에게도 창문을 열어주어야겠다. 지겹던 장마였는데, 이젠 다음 주까지 장마가 조금만 더 머물러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