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선 것은 얼굴이 없다
그저 가만히 서서 감싸인다
서늘한 공기에
서늘한 어둠에
표지판은 어둠 속에 숨었고
나는 방향을 잃었다
왔다가 어느새 가는 것들
이 밤 어디로 갈까?
나는 늘 여기 있고
오는 것들은 늘 지나가니
내가 선 이곳은 그곳이 아니다
분홍빛 물들어가는 서쪽 하늘처럼
바람을 따라 흐르는 잿빛 산처럼
도착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그저 다 흘러 지나간다
전조등도 없는
늦여름의 밤은
낮보다 불친절하게 떠나간다
우리는 서로에게 여름밤처럼 지나쳐 간다
다만
어둠 속에 선 얼굴 없는 나는
이유도 이름도 모르는 것에
천천히 감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