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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Sep 26. 2022

여름 잔상

여름 내내, 아침에 집을 나섰다가 저녁에 같은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길에 장미가 피었다 지고, 나무에 새들이 앉았다가 떠났다. 구름은 늘 하늘에서 흘렀고, 비는 떨어져 길을 따라 흘렀다. 떠나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보고, 기억하고, 남겨두었지만 어쩔 수 없이 여름은 또 잔상으로 남는다.


시간은 흐르고 하나의 챕터가 끝났다. 클라이맥스는 고점을 찍었고, 결말은 늘 그리움이다. 노크하는 듯한 벨소리와 낯선 이의 목소리. 여름 내내 뜨거웠던 볕과 차가웠던 비. 조금 더 떠올려 보면 버스 안은 늘 고요했고 흐르는 풍경들 속에서 나는 시를 읽었다. 그리고 시를 만드는 것은 늘 그리운 사람이다.


당신이 내 옆에서 함께 걸어주어 시가 되었어요


해가 만든 커다란 빛무리

당신을 보러 가며 만났으니 당신이 만든 시예요


함께 바라본 노을,

함께 바라본 낮달,

함께 만난 밤의 천둥소리


내가 이 여름에 만난 시예요


가끔 하루가 의미 없이 지나간다. 낮의 뜨거움은 여름의 잔상처럼 빠르게 식어버린다. 땅에 스며든 뜨거움을 퍼올려 시간을 붙들어도 말라버리는 날은 오고야 만다. 여름을 붙들고 피는 꽃들, 여름의 기억으로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보며 오히려 끝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 시간 여행을 한다면 초여름의 학원 교실로 돌아간다. 사라 강의 노래 'time travelling'을 틀어놓고 청소를 하던 순간. 흥얼거리는 순간.



햇살은 오래된 친구 같아요

열어놓은 창문으로는 자유로운 바람이 드나들어요

브런치 친구들의 글들은 새소리처럼 날아들어요


계단을 경쾌하게 걸어 올라오는 빨간 머리의 앤

커피 한 잔, 오늘 아이들과 함께 쓸 글들


내가 이 여름에 만난 시예요



하나의 챕터가 끝났다. 그리고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다. 시작은 늘 호기심으로 가득할 것이며 걸어가는 과정은 가을의 색깔만큼이나 짐작할 수 없겠지만, 결국 클라이맥스는 다시 노크할 것이고 결말은 또 어느 날 잔상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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