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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Oct 11. 2022

스콘과 딸기잼


정원의 바람개비가 빙그르르 돌았다. 철로 된 바람개비는 물방울이 퍼지는 모양이다. 무거운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을 보니 바람이 확실히 가을다웠다.


카페의 정원을 뒤로하고 현관문을 열자, 심장을 두드리는 느낌의 노랫소리와 빵 냄새가 밀려왔다.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이 너무 어려운 탓에 쭈뼛거리며 카운터로 갔다.


“처음 와서 잘 모르는데, 전기 사용해도 되나요?”

“네.”


첫 번째 난관을 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와이파이까지 연결하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카페 직원이 갖다 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 후에는 낯섦이 점점 설렘으로 변해갔다.


주택을 개조한 카페니 당연히 주변엔 주택이 많았고, 이 시간에 이런 주택가에 손님이 있을 리 없었다. 마당도 조용했고, 실내도 손님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그 고요함이 좋았지만 좀 불편했다. 마이너스 5점. 커피 한 잔으로 카페를 독차지 한 기분이 들어 다시 카운터에 갔다.



샌드위치를 잘하는 카페라지만, 배고프지 않았다. 크로플을 추천했지만 그 위에 올라가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파운드케이크 위에는 설탕 아이싱이 잔뜩 코팅되어 있었다. 마이너스 5점.


“스콘 주세요.”

“플레인이요? 초코요?”

“플레인이요. 버터 주나요?”

“플레인은 딸기잼이랑 같이 나가요.”


마이너스 5점.


“딸기잼은 안 주셔도 돼요.”

“스콘은 딸기잼이랑 드셔야 맛있어요. 딸기가 많이 들어간 잼이니까 한 번 드셔 보세요.”


직원은 눈을 반짝이며 처음 온 손님을 위해 맛있게 먹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초롱한 눈빛에 나는 밀렸다.


“네... “


주문을 끝내고 다시 돌아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기분 좋게 노트북을 열고 음악을 들으며 글쓰기 창을 열었다.

창문 너머로 정원이 보였고, 초가을 바람에 바람개비는 계속 빙그르르 돌았다. 여름이 지나서 피고 있는 노란 금은화가 꽃봉오리를 내밀었다. 기분이 점점 마당을 날아다니는 나비만큼 가벼워졌다.


잠시 후 스콘과 딸기잼, 잼 바르는 나이프와 포크가 내 자리에 놓였다. 스콘은 완벽 그 자체였다. 겉바 속촉이 무슨 의미인지 가르쳐주는 스콘이었다. 달지 않고 고소한 냄새 때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잘 어울렸다. 덕분에 딸기잼에 도전할 마음이 생겼다. 뚜껑을 열어 붉은빛이 도는 딸기잼을 스콘에 바르고, 먹었다.


‘달다. 무지 달다.’


딸기향을 품은 설탕이라고 하면 딱 맞는 맛이다. 스콘의 부드럽고 고소한 향은 사라지고 달달한 딸기향이 아주 오래 남았다.  


‘어떡하지? 남은 걸 다 먹어야 하나? 너무 달잖아. 남기면 기분 나빠할까?’



나는  ‘darbo’라는 딸기잼을 검색해 보았다. 오스트리아 국민 잼이라는 정보를 찾고 나자 난감해졌다. 과일의 함량이 많고, 설탕의 양이 적은 대신 가격이 비싸다는 말에 난감함의 무게가 더 커졌다. 이 카페의 주인은 딸기 잼 하나도 신경을 써서 고르고 손님에게 내놓는 것이다.


‘딸기잼이 남겨진 것을 보면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될까? 자부심은 자기 불신으로 변하려나? 까탈스러운 손님이라고 생각하겠지? 다음에 또 찾아왔을 때 불편해할 거야. 딸기잼을 놓아야 하나, 빼야 하나로 고민하겠지?”


한 숟가락 정도 남은 딸기잼 앞에서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그 달디 단 딸기잼을 스콘에 발라서 다 먹어버렸다.


빵의 맛은 사라져 버렸다. 딸기 맛도 금세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은 오직 설탕의 단맛이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그 단맛을 중화시켜야 했다. 대신 깨끗해진 딸기잼 그릇을 보니 마음은 편했다.



그날 이후 쉬는 날의 낮에는 그 작은 카페에서 글을 썼다. 그때마다 커피와 플레인 스콘을 시켰다. 그때마다 딸기잼이 함께 나왔다. 직접 빵과 쿠키를 굽는다는 직원의 신념을 무너뜨릴 이유는 없기에 딸기잼을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내 취향을 억지로 바꿀 이유도 없기에 난 딸기잼의 뚜껑을 열지 않고 집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냉장고 안에 엄지 손가락만 한 딸기잼이 쌓이고 있다. ‘많이 모으면 친구 줘야지.’ 그런 생각으로 나쁘지 않은 합의점을 찾은 듯하다.


창밖으로는 손톱만 한 나비들이 정원을 날아다녔다. 플러스 5점.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하며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를 추천받고, 유튜브로 플레이시켰다. 이어폰으로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곡이 흐른다. 플러스 5점. 노트북 화면에 글쓰기 창을 열고, 쓰고 있는 소설을 읽었다. 플러스 5점.


“맛있게 드세요.”


직원이 커피와 스콘, 그리고 그 딸기잼을 가져온다. 풍경 소리와 함께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 주문을 한다. 열려있는 창문으로 초가을의 바람이 불고, 바람은 하얀 레이스 커튼을 흔든다. 행복하다.


행복은 숨은 그림 찾기와 같다. 답이 눈앞에 있다면 찾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인지는 알까? 누가 찾아주면 시시해진다. 들여다보고 고민 끝에 찾아냈을 때 나만의 행복이 된다.


스콘과 먹지 않을 딸기잼이 나오지만, 괜찮은 방법을 찾았다. 글을 쓰다가 고개를 들면 노란 금은화 위로 햇살이 반짝였다. 바람개비가 핑그르르 돈다. 무엇보다 카페에 모기가 없었다. 플러스 5점. 이 정도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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