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길 좀 물을게요. 석바위 카페 거리가 어느 쪽입니까?”
집에 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있을 때였다. 길을 물어온 사람은 60대의 남성이었다. 어쩌면 70대일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로 보였다.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었는데, 흰머리를 숨기지 않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는 어른이었다.
“여기서 10분 거리라고 들었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
나는 그가 큰 용기를 냈다고 느꼈다. 그 나이대의 남자는 타인에게 길을 묻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가 가려는 곳을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았다. 걸어서 가면 족히 3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찾기 어려워 보였다.
“10분 거리가 아니에요. 골목 안으로 한참 들어가야 해서, 혼자 찾기 어려우실 거예요.”
나는 지도를 보여주며 택시를 타라고 말해주었다. 서울에 산다는 남자는 이곳이 초행이라며, 여러 명에게 물었지만 사람들이 모른 척 그냥 가서 난처했다고 한다. 그는 택시를 타러 가면서 연신 고마워했다.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며칠 전에 아이들과 썼던 글이 떠올랐다.
어른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이 진짜 어른인지 물었고, 아이들의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스무 살이 넘으면 어른이에요.”
“돈을 벌어야 어른이에요.”
그중에는 학교에서 배웠을 것 같은 대답도 있었다.
“가정을 책임져야 해요.”
답을 한 아이는 그 와중에도 가족이 아니라 가정이라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이 내포된 말이었다. 그러다 점점 아이의 입장을 대변하는 의견이 나왔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 주려면 똑똑해야 해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들어주어야 해요.”
“착해야 해요. 아이들이 보고 배우니까요.”
그리고 어떤 아이는 불가능한 조건을 말했다.
“맥주를 마시면 안 돼요. 맥주를 마시고 밤중에 자는 아들을 깨워 괴롭히면 안 돼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바라보는 어른은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도 배려를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후 내내 생각했다.
‘나는 진짜 어른인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으니, 어른으로서 책임져야 할 7할쯤이 없는 샘이다.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나를 책임지지도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나약한 나는 나와의 약속도 잘 지키지 못하고 있다. 무서운 것도 많고, 실수도 많이 한다. 순간순간 후회하고 자꾸만 돌아본다. 스스로는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에게 어른이라는 것은 완성형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같다. 여전히 철부지 같고, 여전히 어리숙한 나를 보면 길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 없고, 제 자리에 서있기만 할 수도 없으니 목적지를 향해 가야한다. 지금의 목적지는 간단하다.
‘나 하나만큼은 책임지며 살자.’
가끔 미로 안에 있는 것 같다. 지도도 내비게이션도 없어 멍하니 나를 바라볼 때가 많다. 하지만 삶은 누구에게나 초행길이다. 잘 모르고 느리고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물어보아야 한다.
나보다 꼭 나이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가르쳐 줄 수도 있는 거다.
묻는 것을 창피해하지 말고, 또 모른 척 지나치지 말고 서로 가르쳐 주면 된다.
내가 틀린 것도 인정하고, 잘 모르는 것도 인정하면서 가는 것.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가는 것. 가는 길에 타인을 바라볼 줄 아는 것. 지금은 그 정도의 어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