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를 돌면
좁은 골목
환풍기는
점심의 냄새를 뜨겁게 쏟고
높고 긴 담이 해를 막아
그늘진 골목
그 계단
몇 개 없는 그 좁은 계단
아직 찬 바람 불 때
아이 하나 버리고
도망치는 것 같아서
몇 걸음 걷지 못하고
그 계단에 앉았다
외롭겠지
서러울 텐데
낯설어 말도 못 할 사람
그 계단 그늘 속에서
그늘이 되었다
발소리가 계단을 지나가고
발소리가 계단에서 멈춘다
누군 계단에 앉고
누군 하늘을 본다
일어나 걸어갔을 누군가를 따라
일어나 그 골목을 다시 걷는다
역한 락스 냄새
내놓은 쓰레기 더미 속 오줌 냄새
계단을 채 내려가지 못하고
다시 계단에 주저앉았다
골목 끝 햇살이
혼자 내리쬐일 햇살이
날카롭다
그 계단
차라리 그늘 속에서 오래
기억만 남은 발소리 들으며
그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