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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Sep 23. 2022

그 계단

모퉁이를 돌면

좁은 골목

환풍기는

점심의 냄새를 뜨겁게 쏟고

높고 긴 담이 해를 막아

그늘진 골목


그 계단

몇 개 없는 그 좁은 계단


아직 찬 바람 불 때

아이 하나 버리고

도망치는 것 같아서

몇 걸음 걷지 못하고

그 계단에 앉았다


외롭겠지

서러울 텐데

낯설어 말도 못 할 사람


그 계단 그늘 속에서

그늘이 되었다


발소리가 계단을 지나가고

발소리가 계단에서 멈춘다

누군 계단에 앉고

누군 하늘을 본다


일어나 걸어갔을 누군가를 따라

일어나 그 골목을 다시 걷는다


역한 락스 냄새

내놓은 쓰레기 더미 속 오줌 냄새


계단을 채 내려가지 못하고

다시 계단에 주저앉았다

골목 끝 햇살이

혼자 내리쬐일 햇살이

날카롭다


그 계단

차라리 그늘 속에서 오래

기억만 남은 발소리 들으며

그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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