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과 Oct 24. 2022

말 없는 일요일


일요일 아침에 실컷 늦잠을 자고 동네 카페로 글을 쓰러 나갔다. 가을은 성큼 다가와 있었고, 바람이 쌀쌀했다. 어제만 해도 친구를 만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하루 사이에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요.


커피를 주문하고 나자, 옆에 있던 주인이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단발머리를 해서 못 알아봤어요. 진짜 어려 보인다.”


그 말에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몰라 웃기만 하고 작은 방에 혼자 앉았다.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는데, 직원이 커피를 갖다 주었다.


감사합니다.


확신할 수 있다. 그 두 문장으로 오늘 할 말의 총량이 다 되었다. 이후로 더는 나올 말이 없다. 일요일은 그런 날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 글을 쓸 수 있는 날이다.


말은 글보다 어렵다. 내가 아니라 상대를 들여다 보며 선택해야 한다. 잘못 선택하면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거나 선을 넘게 된다. 일요일은 그런 부담에서 온전히 벗어나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날이다.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하고 대답하기에, 매 순간 만나는 미로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 대신 얻게 되는 것이 외로움이고, 기억에 남지 않는 시간이다. 추억이 되지도 않고 지나면 떠오르지 않을 하루다.



하지만 입을 다물면, 사물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예를 들면 카페 작은 방의 서랍장 위에 놓인 향초 같은 것 말이다. 단 한 번도 켜지 않은 망고 색깔의 향초는 본래의 향기가 거의 달아나 비누 향만 조금 남았다.

‘너는 방향제일까? 초일까?’로 부터 시작한 질문은 나에게 도달한다. 그 다음은 자신의 역할 혹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내가 태어난 이유라든가 삶의 의미 같은 것들을 불 켜져 본 적 없는 향초와 나눈다.


“불을 붙여주기 바래?”

“향초잖아. 향기는 나니까.”


“불이 붙어야 향기가 더 나는 거 아니야?”

“불이 붙으면 이 모양이 변해버리겠지.”


“상처받는 게 두려운 거야? 실망하는 게 두려운 거야? 더 이상 불도 붙지 않고, 향도 남지 않을까 봐?”

“두려운 건 없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을 뿐.”


일요일이 반쯤 지나가고 있다. 월요일이 되면 누구보다 많은 말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 된다. 다행이다. 내가 하는 말들이 적어도 마음에 없는 말들이 아니어서. 또 좋아하는 말들을 할 수 있고, 거짓말이 아닌 말을 할 수 있는 직업이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향초와 나눈 그런 재미없는 대화는 누구와도 나누기 어렵다.


이번주 일요일도 떠오르지 않을 평범한 하루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미로 속에 뻗은 여러 갈래의 똑같은 길 중에서 내가 갈 길을 선택하고 걸어간다.

작가의 이전글 밤 비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