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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Jan 02. 2023

고양이의 연애 기술

햇빛을 보러 나온 모양이었다. 빵집 앞을 지나는데, 잿빛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니 가까이 와 꼬리를 살랑거린다.


그렇게 다른 데 볼 거면서 왜 가까이 오는 거야? 다가올 거면 좀 바라봐주든가.


나는 이 아이를 얼룩발이라고 부른다. 빵집 앞을 지날 때면 두 마리의 고양이들이 놀고 있는 것을 자주 보는데, 두 고양이를 구분하는 방법은 발이다. 한 아이는 흰발, 한 아이는 얼룩발.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관심을 기다리는 고양이는 줄무늬가 있는 얼룩발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 줄무늬가 없는 흰발 고양이도 나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아이다.



비 오는 여름밤에 빵집 진열대 위에서 잠을 자던 그 고양이가 흰발이다. 빗소리도 사람들이 지나가던 소리도 아랑곳 않고 태평하게 자던 고양이의 느긋함에 반했던 기억이 있다.


그 흰발 고양이와 달리 지금 내 앞에 있는 얼룩발 고양이는 다른 이유로 웃음이 났다. 분명 먼저 다가와 놓고 딱 알맞은 거리에서 아닌 척 밀당을 하는 게 너무 귀여웠다. 내가 사진을 찍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얌전히 찍혀주면서, 눈은 마주쳐주지 않는 거다.


“너 이런 기술 어디서 배운 거냐?”


눈을 마주쳐주지 않으니 안달이 난다.


"야옹하는 소리 한 번 듣고 싶네. “

“반짝이는 눈 한 번 보여주면 좋을 텐데."



가까이는 다가오지만 눈은 마주치지 않는 것이 이 녀석의 성격인 모양이다. 성격이라면 인정해 줘야지. 우린 오늘 처음, 거리가 가까워진 거니까. 내가 너에게 먹이를 준 적도 없으니까.


그런데 길바닥에 발랑 누우며 배를 보여준다. 사람이면 다 좋은 모양이다. 눈은 마주쳐 주지 않으면서 가지 말라고 붙잡는다. 돌아설 수 없게 하는 애교에 저절로 손이 움직였다.


손이 다가가자 온몸을 비틀며 발을 뻗었다. 내 손이 고양이 장난감인 듯 치려 하고, 잡으려 한다. 겁이 난다. 싫다는 건가? 만지지 말라는 건가? 괜히 건드렸다가 할퀴면 어떡하지?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그 길에 등을 비비며 팔을 휘젓는 바람에 얼굴이 드러났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의 고양이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다.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놀아달라는 거야? 치우라는 거야? 확실하게 해주지 않으면 나도 겁이 난다는 것을 녀석은 알리가 없다.


나는 용기를 내서 얼룩발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갑자기 녀석이 얌전해진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움직이지 않고 기다린다. 사람의 손이 좋은 모양이다. 사랑받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걸까?

고양이의 털은 오랫동안 씻지 않아 기름졌다. 털 사이사이에는 먼지와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등을 쓰다듬어주는 내내, '목욕시켜야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손을 떼고 싶지가 않았다.


사랑하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다가가야 시작된다. 용감하게 다가가야 서로를 알게 된다. 서로를 알아야 털 사이의 먼지와 기름에도 불구하고 쓰다듬어 줄 수 있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잡을 수 있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녀석은 용감했다.


안녕, 다음에 또 보자.


손에 묻었을 고양이의 흔적을 씻기 위해 물티슈를 꺼냈다. 돌아보니 고양이는 어딘가로 또 어슬렁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뒷모습 어디에도 다음이란 없어 보였다. 모든 헤어짐이 그렇듯 또 다른 손길을 찾아가나 보다. 그렇다면 산뜻하게 헤어지자. 잠깐이었지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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