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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Jan 10. 2023

빈 의자

햇빛이 좋은 날은 조금 일찍 출근한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 정거장쯤 먼저 내려서 학원까지 걷다 보면 좋아하는 골목이 나온다.


헌책방, 갤러리, 북 카페 등이 오래된 건물에 숨어있는 작은 골목. 가끔 드라마 촬영하는 사람들을 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고요한 그 골목에서 빈 의자 2개를 만났다.


하나는 칠이 벗겨지고 등받이도 따로 없이 돌로 된 벽에 붙은 의자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앉은 의자일까? 당장이라도 부셔 땔감을 쓴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의자였다.


또 다른 의자는 나무를 그대로 잘라 기둥을 삼은 작품 같은 의자였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의자는 광택제를 발라 반짝였다. 나무 기둥을 그대로 잘라다가 의자와 등받이를 이어놓으니 유니크한 멋도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의자에 쓰인 문구였다.


“내게 와 쉬려므나….“

그것은 동화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올리게 했다.


또, 의자 바닥에는

“걱정 마. 잘 될 거야. 다시 꽃핀다."

라고 적혀있었다. 예쁜 의자였다. 의자를 만든 주인, 혹은 작가의 마음도 엿보였다. 하지만 묻고 싶다.


어느 의자에 앉을래요?


위로는 빈 의자와 같다.


위로의 말을 가볍고 쉽게 뱉으면 안된다.

“걱정 마. 잘 될 거야.” 같은 긍정은 강요하면 안 된다. 타인을 위한 긍정은 웃는 가면을 쓰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걱정이 없다고, 잘 되고 있다고 거짓말하게 된다.


나는 같은 골목에서 2개의 의자를 보았다.


그중 오래되고 낡은 의자에 잠시 앉아 구름 사진을 찍었다. 햇살이 나무에 부딪쳐 벽에 그림자를 만드는 것도 찍었다.

화강암으로 된 벽에 등이 배기고, 의자는 튼튼해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이 편했다. 의자 덕분에 오랜만에 구름이 흐르는 것을 보고, 조용한 골목에 내리쬐는 따뜻한 겨울의 햇빛을 보았다.


누구도 앉으라 하지 않았지만 앉을 수 있었고, 하늘 한 번 보라고 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하늘을 보고 있었다.


진심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참 어렵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을 때가 더 많다. 거짓이 진짜인 것 같을 때, 진심이 외면당할 때, 무엇이 맞는 건지 헷갈릴 때가 허다하다.


그런데 진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알게 된다.


위로는

내가 널 위로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같이 있어주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의자는

쉬라는 문구가 적힌 순간부터 의자가 아니라, 광고다. 그저 편히 앉을 수 있어야 진짜 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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