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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Jan 25. 2023

플라스틱 꽃


저희 센터에선 더 이상 돌봐드릴 수가 없어요.


엄마를 낮 동안 돌봐주던 곳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학원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직장이나 생활비나 개인 생활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 우선순위는 엄마가 되었다.      


학원을 그만두던 날, 선물과 꽃다발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했다. 이제 하루 종일 엄마와 시간을 보내겠구나.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인 것을 알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막상 시작해 보니 외줄 타기 대신 낭떠러지 끝에 선 하루하루였다. 조금만 뒤로 물러나도 떨어질 것만 같은 날들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 뒤로만 갔고, 결국 나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요양원으로 향했다.


엄마를 요양원에 들여보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날부터는 무인도의 하얀 모래사장에 선 기분이었다. 구조해 줄 배 대신 무심한 파도가 들어왔다가 나갔다.




빈집에 혼자 남은 날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버릴 수 있는 것들을 버리다가 그 꽃다발을 발견했다.     


학원을 그만둘 때 받은 아름다운 꽃다발은 시들지 않고 본래의 색을 그대로 가진 채였다. 생명이 없는 플라스틱 꽃이었지만, 공장에서 만들어졌을 색깔만은 선명했다. 먼지를 털어내자 꽃들은 방금 피어난 것 같았다.


우습게도 그 플라스틱 꽃들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생명도 없고, 향기도 없는 플라스틱 꽃인데 아름다웠다.


역할을 다 해낸 그 꽃들은 아직도 피어, 바라보는 사람에게 추억을 전해주고 있었다. 옆에 웃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이별을 아쉬워하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향기는 없었지만 괜찮았다. 물을 줄 필요도 없었고, 햇빛을 받을 필요도 없었고, 시든 잎을 떼어내 줄 필요도 없는 꽃이었다. 누구의 도움 없이도 살아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웠다.




나는 그 플라스틱 꽃다발을 가장 예쁜 유리병에 넣어 책장에 두었다. 엄마의 약병을 치운 자리에, 햇빛은 들지 않지만 제일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두었다.


2년이 지나는 동안 바라봐주지 않은 그 꽃다발을 2년 치만큼 바라보았다. 책들 사이에서 꽃은 맡을 수 없는 향기를 조금씩 내뱉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꽃다발을 주며 배웅했던 그 학원의 원장님이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
”다시 일하실 수 있어요? “


다시 학원 일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플라스틱으로 된 꽃다발은 내 책장에 놓여있다. 물을 주는 대신 가끔 먼지를 털어주며 여전히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놓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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