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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Jan 17. 2023

구름의 속도


나는 한 방울의 물방울로 흐른다.

하얀 구름 속, 누구보다 투명한 채.


나는 한 방울의 투명한 물방울로 존재한다. 딱 적당한 온도에서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나를 유지해야 한다.

만약 뜨겁고 싶어 조금이라도 태양에 가까워지면 증발하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차가워진다면 분명 땅으로 추락하니까.


돌아보면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물방울들. 하얗게 질린 내 앞의 물방울과 무수히 덮쳐오는 내 뒤의 물방울들. 나는 구름의 속도로 보이지도 않는 바람에 등 떠밀려 흐른다.     


들여다보면 모두 내면에 무지개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보고 있나?


가끔 너무나 아득한 하늘, 가끔 너무나 아득한 땅, 끝없이 밀려가는 물방울들, 끝없이 밀려오는 물방울들. 각자의 자기장에 스스로를 가둬두었다.

더 빨라진다면 내 앞의 물방울과 부딪쳐 파편으로 부서지니까. 더 느려진다면 내 뒤의 물방울과 부딪쳐 흩어지니까.


이 하얀 속도에 갇혀있을 것인지 생각한다.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고 똑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구름의 속도를 생각한다.


나는 나의 속도를 결정해야 하지만, 다가오는 모든 발소리는 하얀 구름의 속도. 밀려가는 물방울은 모두 눈을 감았다. 감싸는 공기는 냉정하다.


차라리 차가워지고 싶다. 이대로 얼어버리고 싶다. 내 안의 무지개조차 얼려버리고 싶다. 나의 속도로 흐를 수 없을 바에야, 나의 색깔로 반짝일 수 없을 바에야, 이대로 얼어버리고 싶다.


어떤 것에도 등 떠밀리기 싫고, 어떤 것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싫고, 거대한 하얀색 속의 투명한 물방울이기 싫어서, 그렇게 구름이 흐르는 속도로 흐르다가 바람에 증발되기 싫어서 멈춘다.


무거워진다.

떨어진다.

가속도의 가속도의 가속도의 속도로 떨어진다.


별을 품은 얼음 알갱이로 떨어질 것인가? 무지개를 품은 물방울로 떨어질 것인가? 하얀 별이 되어 누군가의 미소 위에 떨어지려는가? 무지개가 되어 누군가의 미소를 피어오르게 하려는가?

어느 곳이든 떨어져 멈춘다면,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지더라도, 꽃을 보리라. 떨어진 수많은 물방울이 피워낸 꽃들. 꽃으로 피어난 물방울의 무지개를 볼 것이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구름의 속도를 본다.

끊임없이 흐르는 하얀색의 무심한 속도 속에서

떠밀려가는 수많은 물방울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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