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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Jan 30. 2023

눈 치우는 소리에

아침 7시에 눈이 떠졌다. 밖은 아직 어두웠고 잠을 깨운 것은 눈 치우는 소리였다. 플라스틱 쓰레받기로 바닥의 눈을 긁는 규칙적인 소리에, 눈이 왔구나 하며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섰을 때도 포슬포슬한 눈송이가 드문드문 날아다니고 있었다. 꽤 내린 눈은 여기저기 쌓여있었고, 골목은 정갈하게 치워져 있었다.

눈이 올 때면 늘 그랬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골목에서 찻길까지 눈을 치워 출근길도 퇴근길도 수월했다.



그래서 눈이 내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웃에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겨울 풍경을 다르게 보도록 한다.


너무 평범해서 늘 포커스 아웃되던 것들이 끌어당겨진다. 하얗지만 차가운 눈을 잔뜩 얹고도 푸른빛인 이 사철나무처럼 말이다.


‘이렇게 예뻤던가?’



우리는 항상 푸르를 수 없다.  얼음투성이 속에서는 대부분 자신을 잃어버리고 얼음에 가까워진다. 색깔을 잃고, 향기를 잃고 겨울을 원망한다.


하지만 눈이 앉았다고, 눈 때문에 내가 앉을 수 없다고 탓할 수는 없다. 꽃잎이 앉았던 자리에는 햇살도 앉고, 똑같은 자리에 낙엽도 앉는다. 눈만 예외일 수 없다.



시간은 흐르고, 겨울은 지나간다. 추웠던 날이 지나면 의자에 쌓인 눈은 녹고, 따뜻한 햇살이 의자에 가득 앉는다. 지금은 앉을 수 없는 사람 대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의자에 앉아 위안을 얻는다.


나는 그 어디쯤에 있다.


겨울을 싫어하지만 눈은 좋아한다. 겨울은 숨기고만 싶은 나를 자꾸만 보라고 해서 싫다. 잿빛의 하늘과 다 잃은 나무와 차가운 공기가 나 같아서 싫다가도, 눈이 내리면 안심한다.



어디든 쌓여있는 눈을 보며 웃는다. 하얀 얼음알갱이들은 차가운 냉기만큼이나 따뜻한 온기도 내뿜는다.

추운데 웃음이 난다.


겨울에는 눈이지만 봄이 되면 물이 될 테지. 땅을 적시고 나무가 다시 잎과 꽃을 피우게 하겠지. 하얀 빛깔 속에 싱그러운 초록빛과 두근두근한 분홍빛과 웃음소리 같은 노랑빛이 숨어있다는 걸 알기에 웃음이 난다.



그래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한다. 차가운 눈을 맨손으로 만지고 친구들끼리 눈을 뿌리게 한다. 순식간에 얼어버린 손은 따뜻한 손이 잡아준다. 웃음이 물들어간다.


눈이 온다고 연락하고, 만나고, 사진을 찍는다. 눈이 온다고 글을 쓰고, 그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 웃음이 퍼진다.


눈을 치우는 이름 모를 그 이웃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자신 안의 따뜻함을 표현한다. 그 따뜻함은 어떻게든 누구에게든 전달되고, 따뜻함은 또 다른 따뜻함을 낳는다.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선물한 눈오리 집개 하나를 가져왔다. 눈이 내린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와 눈오리를 만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부끄러웠지만 용기를 냈다. 옆집 강아지가 짖어댔다. 눈치도 없이.


다 완성한 눈오리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 두고 돌아왔다. 겨울을 걷는 사람들이 한 번쯤 웃어준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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