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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Apr 18. 2024

괜찮아! 예뻐!


혼삶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자신 있었다. 혼자 영화도 봤고, 혼자 카페서 시간도 보냈다. 혼자 어시장도 가봤고, 전자제품 사는 일도 병원에 가는 일도 쉬워져서 그만 자만하고 말았다.                

올봄은 벚꽃을 꼭 보러 갈 거야. 혼자!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전철역에서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을 걸으며 옛날 모습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싶었다. 꽃잎이 날리는 배경 너머로 반짝이는 바다를 보고 싶었다. 벚꽃이 핀 도깨비의 촬영지도 보고, 아주 긴 벚꽃 산책로를 오랫동안 걸을 생각이었다.


천천히…


산책로는 그대로였다. 백 년은 됐을 듯한 벚나무마다 무수히 뻗은 가지에 벚꽃이 가득 매달렸고, 연한 분홍빛 도는 꽃들이 하늘을 가리고 드문드문 꽃잎이 흩날렸다. 하지만 나는 산책로의 벚꽃을 온전히 구경할 수 없었다. 꽃을 보러 온 내 눈은 점점 사람들을 향했고, 내 발은 내 의지와 다르게 빨라졌다.      



산책로에는 벚꽃만큼이나 사람들도 많았다. 친구들끼리 온 노년의 어머니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 초등학생 손주들과 온 노부부. 반려견과 함께 온 커플. 누가 봐도 연인. 그리고 ‘엄마, 거기 서봐.’라며 엄마를 벚나무 아래 세워두고 사진을 찍는 딸.      


벚꽃 산책길에서 혼자인 사람은 나 하나였다.     


‘괜히 왔어.’하는 마음은 내 걸음을 점점 더 빨라지게 만들었다. 누구도 관심 없을 일인데, 아무도 눈길 주지 않을 일인데 혼자 생각이 많아졌다.      


처음의 목적은 사라졌다. 봄을 충분히 구경하고 느끼고 힐링하자. 그런 목적 따위는 사치였다.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괜히 이것저것 사진을 찍으며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려 했다.           


그러다 벚나무 사이를 걷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노란색 고양이는 한 번도 씻은 적 없는 듯한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피해 도망갔다. 생각해 보니 공원을 빨리 빠져나가려는 내가 그 고양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봄은 너무나 예뻤고, 벚꽃은 사방에 피어있었다. 아기를 데려온 부부는 벤치에 앉아 비눗방울을 만들고,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바다는 반짝이고 날리던 꽃잎이 손바닥에 떨어져 소원도 빌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초대받지 못했던 13번째 마녀처럼 삐뚤어져갔다. 저주를 퍼부은 것은 아니다. 다만 봄도 벚꽃도 그저 그런 시시한 것이 되어버렸다. ‘올해는 꼭!’이라는 특별했던 이벤트가 ‘이게 뭐라고...’라는 쓸데없는 노동으로 퇴색했다.           


“무엇 때문일까?”     


이리저리 생각해 보니 나에게 빠진 것은 딱 하나, ‘진짜 예쁘다!’라고 말할 사람이었다. 감탄을 전할 사람이 없으니 감탄할 수 없고, 내 입으로 감탄사를 내뱉지 않으니 정말 아름다운 것도 평범해졌다.       


만약 “우와! 너무 예쁘다!”라고 혼잣말을 했다면, 산책로의 그 고양이만도 못한 이상한 사람이 될 게 분명했다. 나는 말없이 산책로를 벗어났다. 행복 대신 피로가 밀려왔고, 평범한 하루보다 못한 날이 되어버렸다.


잠깐…


감탄하지 못해서 평범해진다면, ‘우와! 예쁘다!’라고 감탄하는 순간 일상적인 것도 특별해지는 것이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날이라도, 단골 카페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늘 듣던 플레이리스트의 노래 속에서도  ‘너무 행복해!‘라고 감탄하는 순간, 진짜 행복해지는 것이다.           



난 올해도 찾아온 봄에 찬사를 보내고, 여전히 아름다운 봄에 대해 감탄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소중한 것은 휘몰아치듯 만개했다가 휩쓸려 사라지는 벚꽃이 아니라 스며들어 내 곁에 항상 존재하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을 벚꽃 보듯 바라보고 감탄해 준다면, 매일매일이 벚꽃 나들이 같을 것이다.


그 사람 중 한 명은 분명 자기 자신이다. 친구라는 것이 서로의 삶에 감탄해 주는 관계라면 나는 먼저 나의 친구가 되어야겠다. 그래야 혼자서도 천천히 걷고, 오롯이 바라보고, 감사할테니까.


짧아서 더 아쉽고 아름다운 봄이 또 조금씩 지나간다. 하지만 괜찮다. 봄이 지난 그다음 날의 평범한 하루도 감탄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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