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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Apr 20. 2022

밥은 먹고 다닙니다

혼자 살기로 했다(3)


"내가 먹은 음식이  몸을 만든다."


좋은 음식을 먹으라는 말인 건 알겠다. 그런데 다들 그렇게 먹고 있을까? 무농약에 유기농, 보존제도 없는 자연식으로만 먹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마침 아침에 먹을 상추를 씻고 있었다. 오이도 한 개 씻고 나서 같이 먹을 고추장의 성분표를 보았다. 합성 착향료, 향미 증진제 등 외울 수 없는 성분이 잔뜩이었다. 나는 내가 뭘 먹고 있나 확인하려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런데 그 안에 있는 것은 나였다.


나는 하루에 두 번 냉장고를 확인한다. 오늘 먹을 것이 있나? 내일 아침 먹을 것이 있나? 냉장고 안에 먹을 것이 가득한 날은 없다. 과일이 있고, 계란 신선한 채소, 멸치, 덜어놓은 김치,  지금은 그 정도다. 가끔 고기가 있고, 가끔 두부가 있고, 가끔 인스턴트 햄이 있다. 변화는 없지만 규칙은 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

    배달 음식 먹지 않는다.

    혼자 외식을 하지 않는다.


괜한 고집이다. 그렇게 정해놓으면 나를 위해 뭐라도 하는 것 같은 안도감 때문이다. 덕분에

혼자 살며 나의 냉장고 점점 비어갔다.

냉장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친구라면 내 냉장고는 지금 무척이나 냉대받고 있.


나는 냉장고의 반 이상도 채우지 않는다. 혼자 살기 시작하며 생긴 습관이다. 식재료를 많이 사봐야 금세 상할 뿐이다.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것을 몇 번 경험했고, 이젠 조금만 사는 것이 몸에 뱄. 그러다 보니 마트를  가고, 어느새 마트 직원과는 안부 인사를 나누, 세일 품목을 추천받는 사이가 되었다.


이유는 또 있다.  한 사람을 위해 많은 재료와 시간과 수고를 들여 음식을 만들고 싶지 않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에게 음식은 공과금 사용료 같다. 몸을 쓰기 위 사용료 내겠지만,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은 마음이다.


시간도 부족하다. 혼자 살 시작하면서,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 집안 많아졌다. 또 출퇴근을 하다 보면 최대한 시간을 남겨 쉬고 싶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해졌고, 자연스레 음식 만들기는 순위권에서 밀려나버렸다.


무엇보다 음식에 시간낭비를 안 하는 이유는 '음식 기억'기 때문이다.


엄마는 섬사람이다.  집에 손님이 오시면 생선이나 해산물을 생으로 내놓거나 삶거나 구웠다. 딱히 요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게 아니면 소금에 절인 생선, 소금에 절인 굴과 조개, 아주 매운 매운탕이 밥상에 올랐다. 하필이면 엄마는 솜씨도 없었다. 운명적으로 나는 원재료의 맛 그대로가 가장 맛있다고 느끼며 자랄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외삼촌이 가져온 살아있는 꽃게를 그대로 찜통에 넣어 쪄먹은 적이 있다. 가족들이 큰 상에 둘러앉아 빨갛게 익은 꽃게를 부셔가며 속살을 먹었었다. 그저 꽃게였다. 그런데 이리저리 껍질까지 튀어가며 먹은 그 맛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생굴의 신선한 맛과 해삼의 쫀득한 맛, 생다시마의 그 바다 향기 가득한 맛이 내 기억을 온통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채소를 사고, 과일을 사고, 고기를 . 채소와 과일을 생으로 먹거나, 고기를 구워 먹. 어느새 채소과일, 고기의  그대로가 가장 익숙하고,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내가 된 것이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기억을 만드는 일이다.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준 기억, 함께 맛있게 먹은 기억, 혹은 맛없게 먹으며 싸운 기억이라도.

기억이 반복되면 마음이 생긴다. 행복한 마음, 고마운 마음, 함께 먹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 되새김을 하는 마음.


호박전을 하면 그 노릇전 위에 빨간 고추 썬 것을 올리던, 위암으로 너무 일찍 죽은 친구가 떠오른다. 닭백숙을 하면 조카들 데리고 광주에서 가장 유명한 계곡에 데려갔던 이모가 떠오른다. 췌장암으로 배고파하며 돌아가신 이모. 생선은 먹지 않는다. 말린 생선을 좋아했지만 먹지 못하는 엄마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 기억과 마음이란 사람을 포함한 말이기 때문이다.


혼자 삶을 결정하고 제일 먼저 포기한 것은 함께 먹는 것이다. 이제 나에게 음식은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먹는 것이다. 숨을 쉬는 것처럼 잠을 자는 것처럼 기본적인 삶의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 아직은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대신 가끔 친구들을 만나 식당을 간다. 평양냉면과 순댓국과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다. 맛있다고 느끼며 먹는다.

분명 먼 훗날에도 그 음식을 보면 친구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 음식을 만든 것은 식당 요리사지만, 오르는 것은 친구들인 거다.


내가 먹은 것이 나의 몸만 만드는 게 아니다.

내가 먹었던 것들은 내 마음을 만들어 왔다. 무엇이 행복한 것인지 가르쳐 주었고 무엇이 아픔인지 가르쳐 주었다.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가르쳐 주었다. 얼마나 보고 싶은지 알게 하는 것이 내가 먹은 것들이다. 음식은 그리움이고,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사진이다.


지금 제일 먼저 오르는 음식이 뭐냐고, 당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엄마의 김치찌개다. 맛없는 김치를 푹 익혀서 돼지고기를 넣고 끓여준 김치찌개.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김치가 그렇게 맛없기도 힘들 테니까.  


내가 먹은 음식이 내 몸을 만들었다는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음식을 건강의 개념으로만 정의 내릴 수 없다. 난 나의 냉장고를 열어보고 그 안에 지금의 내가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말이 하고 싶어졌다.


"내가 먹은 음식이  영혼을 만들었다."


건강한 식사, 그전에 행복한 식사를,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식사를 권하고 싶다. 함께 먹으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음식이 당신을 행복하게 한다고.

그 음식이 당신의 따뜻한 추억이 되고, 따뜻한 마음이 되어 당신을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그래서 감사하고 싶다. 나와 함께 밥을 먹어주는 친구들에게. 그 따뜻한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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