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하루 전이되었다. 하필 햇살은 눈이 부셨다.뚜껑을 열지도 않은 복숭아 통조림이 되었다. 냄새도 흘러나오지 않을 만큼 단단히 닫힌 통조림이다. 괜찮아라는 말로 통조림에 인쇄된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어느새 2+1 그러다 1+1이 되었다. 빨리 치워지기 바라는 칸에 위치한 수많은 통조림들 사이, 보이지 않는 끝줄에 대기하고 있었다.
봄은 끝자락에 와있었다. 분홍빛들이 떨어지고 초록의 오랜 시간이 몰려들었다. 흔들리는 초록 속으로 잿빛이 내려앉는다. 남아있는 봄은 더 이상 봄이 아니다. 기쁨과 설렘은 철없는 고집이다.
숨 막히는 경계선 앞에서 결정을 해야 한다. 침범당한 영역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나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인쇄된 유통기한은 추방당하는 날짜였다. 기한이 넘어가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통조림 안에 갇혀있는 것은 구석의 구석에 자리 잡은 오래된처음이었다.
플레이리스트를 플레이한다. 1시간 11분 48초 후에 노래는 끝난다. 그 시간조차 지루해 중간에 멈춰버린다. 처음은 누구나 같고, 끝은 각자에게 주어진 결정이다. 끊임없이 계속될 음악은 없으므로 끝을 미룰 수는 없다. 계속되는 춤은 없다. 계속되는 황홀함도 두근거림도 다 거짓말이다. 영원히 내리는 비는 없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회전목마도 멈춘다. 멀미로 쓰러지지 않으려면 하얀 목마에서 내려야 한다. 잎이 나오겠다는데 가지를 부러뜨려봐야 소용없다. 불꽃은 하늘에서 다 터지고 밤은 어둠으로 돌아간다. 축제는 끝났다. 누가 정해놓은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 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