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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Apr 22. 2022

유통기한 하루 전

유통기한 하루 전이 되었다. 하필 햇살은 눈이 부셨다. 뚜껑을 열지도 않은 복숭아 통조림이 되었다. 냄새도 흘러나오지 않을 만큼   단단히 닫힌 통조림이다.  괜찮아라는 말로 통조림에 인쇄된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어느새 2+1 그러다 1+1이 되었다. 빨리 치워지기 바라는 칸에 위치한 수많은 통조림들 사이, 보이지 않는 끝줄에 대기하고 있었다. 


봄은 끝자락에 와있었다. 분홍빛들이 떨어지고 초록의 오랜 시간이 몰려들었다. 흔들리는 초록 속으로 잿빛이 내려앉는다. 남아있는 봄은 더 이상 봄이 아니다. 기쁨과 설렘은 철없는 고집이다.  

숨 막히는 경계선 앞에서 결정을 해야 한다. 침범당한 영역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나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인쇄된 유통기한은 추방당하는 날짜였다. 기한이 넘어가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통조림 안에 갇혀있는 것은 구석의 구석에 자리 잡은 오래된 처음이었다.


플레이리스트를 플레이한다. 1시간 11분 48초 후에 노래는 끝난다.  시간조차 지루해 중간에 멈춰버린다. 처음은 누구나 같고, 끝은 각자에게 주어진 결정이다. 끊임없이 계속될 음악은 없으므로 끝을 미룰 수는 없다. 계속되는 춤은 없다. 계속되는 황홀함도 두근거림도 다 거짓말이다. 영원히 내리는 비는 없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회전목마도 멈춘다. 멀미로 쓰러지지 않으려면 하얀 목마에서 내려야 한다. 나오겠다는데 가지를 부러뜨려봐야 소용없다. 불꽃은 하늘에서 다 터지고 밤은 어둠으로 돌아간다. 축제는 끝났다. 누가 정해놓은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 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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