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기로 했다(8)
버스 문이 열렸다. 정거장에 내려서 왼쪽으로 돌자 초여름을 품은 길이 나왔다. 나는 이 길을 사랑하고 있다.
그냥 보면 좁고 낡은 길이다. 오래되고 못생긴 나무들이 너무 큰 잎을 너무 빽빽하게 만드는 길. 덕분에 가을이 끝날 때쯤 거리에는 손바닥보다 큰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다.
예쁜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래된 레코드 가게, 오래된 양복점, 오래된 보신원이 있는 볼품없는 길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 길이 좋았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일까? 마음이 편했다. 낡은 것들에 마음이 끌렸다. 익숙한 것을 만나니 긴장하지 않아서 좋았다.
햇살의 방향도 좋았다. 그 사간에 그 각도로 들어오는 햇살의 해사함에 나무들의 그림자도 웃는 듯했다.
나무의 기둥과 가지와 커다란 잎이 만든 그림자는 2층짜리 건물과 좁은 길을 가득 차지했다. 그림자를 보며 걷다 보면 숲길 같았다.
그 길 위에 익숙해진 카페가 하나 있고, 1년 가까이 내려다보던 나의 창문이 있다.
운이 좋았다. 초등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싶어 하는 원장님을 만난 것에 감사했다. 함께 일하게 된 선생님들의 그 선함에 매 순간 감사하다가 ‘왜 이렇게 운이 좋지?’라고 스스로 두려워졌다.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을 짐작하는 성격 탓이다. 어느 날, 이 공간과 이 아이들과 이 선생님들을 뒤로하고 헤어짐의 길을 시작할 때 참 많이 그립겠다. 벌써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두 번째 길은 횡단보도를 건너며 시작한다. 4거리의 횡단보도 앞에서 보면 그 길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그 길이 점점 가까워지면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느티나무들이 빽빽한 이 길은 차가 지나가지 않는 시간이 더 많다. 때문에 바람과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가 오롯이 들려온다. 작은 새들이 여름을 노래하는 소리도 선명히 들려오는 길이다.
봄이면 나뭇가지들이 몽땅 잘려나가는데도 나무들의 생명력은 잘려나간 가지보다 더 많은 가지를 만들고야 만다. 그것을 본다. 텅 빈 몸에서 다시 시작하는 나무들을 본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그 모습을 본다. 초라한 나무들이 조용히 기다리는 것을 매일매일 본다. 아주 천천히 가지부터 만들고, 기다리고, 새순을 만들고, 기다리는 그 지루한 시간을 옆에서 목격한다.
어떤 나무는 너무 쉽게 가지를 나뭇잎으로 가득 채우고, 어떤 나무는 영원히 잎을 만들지 못할 것 같은 시간을 참아낸다. 그 시간을 지켜보다 보면 조금 늦을 지라도 기어코 잎을 만들어 내는 것을, 자신이 나무임을 증명하는 순간을 만난다.
그 길의 벤치에 앉아서 길과 나무들을 사진으로 찍는다. 가장 아름다울 때를 사진으로 남겨둔다. 그 사진 속에는 나무만 담기는 게 아니다. 기대와 기다림, 기어이 증명해낸 당당함까지 담긴다. 그리고 함께 보았었던 사람의 미소. 마지막 길은 그 미소를 보러 가는 길이다.
5월 6일 금요일 아침은 특별한 날이었다. 2년 가까이 코로나 때문에 격리되었던 엄마를 동생 가족과 같이 만났다. 2년 만에 엄마의 손을 잡아보았다.
“엄마가 알아보나 봐. 끄덕였어.”
동생은 엄마의 손을 놓지 못하고, 울었다.
자신에게 엄마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희미해지고 있었다며 사진을 잔뜩 찍었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30분 정도 만나고, 다시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동생 가족들이 돌아가고 일요일이 찾아왔다. 원래는 토요일에 가던 것을 이번 주만 일요일로 바꿨다. 일요일은 어버이날이었다.
집을 나서며 엄마에게 줄 꽃바구니를 챙기고, 수박을 한 통 샀다. 날씨는 좋았다. 매주 가는 길은 이제 눈을 감고 가라고 해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계산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것뿐이다. 얼굴을 볼 수 없겠지만 이젠 웃는 것도 볼 수 없지만 걸어간다. 초등학교 뒷길을 걸을 때면 학교 담에서 자라는 들꽃을 구경한다. 작은 공원에 모여계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보며 잠시 웃어본다.
골목이 나오면 계단을 오른다. 계단의 한쪽은 커다란 담이고 한쪽은 요양원의 창문들이다. 창문을 열면 답답한 벽이 가로막고 있겠지만 그 안에 계신 분들 중 창밖을 보고 답답하다고 할 분이 있을까?
현관에 도착해서 호출 버튼을 누르자, 보호사가 나왔다. 엄마에게 줄 꽃바구니와 수박을 건네고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인사를 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30초. 꽃바구니인 줄도 모르겠지만 수박을 몇 조각 드시고 말겠지만 그것으로 또 일주일을 산다.
보호사님이 들어가시고 몇 번이나 뒤돌아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은 여기까지가 가장 가까운 거리다. 그리고 조금씩 멀어진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손도 잡을 수 없었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 왔다는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한 걸음씩 멀어진다. 등 뒤에 남겨두고 돌아가는 길에도 햇살은 반짝인다. 바람도 살랑살랑 분다. 조용한 주택가 골목길을 걷는다.
길은 그런 곳이다. 멈추지 않는 것. 이어져 있는 것.
길은 방향이 있고, 목적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길은 그래서 무섭다. 냉정하다는 말이 맞겠다.
길 끝에 사랑하는 그곳이 있다. 길 끝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으로 겁나지 않고, 따뜻해진다. 그래서 길은 소중하다.
깊은 겨울의 눈 쌓인 길도, 한 여름의 숨이 턱 끝까지 차는 길도 소중하다. 어쩌면 쳇바퀴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미지의 처음 가보는 길을 사랑하겠지만 나는 이 길을 사랑한다. 나를 지켜봐 주고 추억을 만들고 또 만나게 될 이 길을 사랑한다. 매일 닮은 듯 조금씩 변해가는 친구 같은 이 길, 이 길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까지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