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기로 했다(10)
선생님, 오늘 쓰는 거 외워요?
5월이 되고 아이들이 수업 시간마다 물었다. 아니라고 말해주면 그때서야 긴장을 풀고 글쓰기 준비를 한다.
발표 수업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발표 수업을 하는데, 4월에는 자기가 쓴 시를 외워서 발표했다. 5월은 감상문이었다. 어떤 이야기였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외워오면 수업시간에 아이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동영상을 찍는 수업이다. 저학년은 1분 정도, 고학년은 2분 정도 길이의 이 발표 수업을 아이들은 부담스러워한다.
“괜찮아. 틀려도 돼. 다시 하면 돼.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말해도 아이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선생님, 머리가 하얘져요.”
“선생님, 심장이 아직도 두근거려요.”
“선생님, 한 번만 안아주세요.”
분명 열심히 외웠는데도 친구들 앞에서 또 동영상까지 찍으면 긴장하고 두려운 게 당연한 거다.
그래서 더 시킨다.
한 달에 한 번은 주인공이 되어보라고,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경험을 가져보라고 꼭 발표를 하게 만든다. 수많은 아이들 중에 한 명으로 자기 목소리를 잊은 채 공부와 시험에 지쳐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학원은 영어 중심의 학원이다. 영어 때문에 보내는 부모님이 대부분이지만, 수학도 그만큼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테스트를 보고 반을 수준별로 나누는데, 반을 옮길 때마다 뿌듯해하는 아이도 있고, 실망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친구는 절대 따라갈 수 없어요.”
그 말에는 ‘나는 못하는 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겨우 초등학생인데 벌써 자신의 한계를 선으로 그어 놓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그중에 한 반이 있다. 친구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인정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본 적 없는 것 같은 아이들. 도전해서 성공해본 경험이 없는 것 같은 아이들이 모인 반이다.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선생님, 교재를 안 가져왔어요.”
“교재를 가져오고 안 가져오고는 중요하지 않아. 너희들이 노력했느냐가 중요한 거야.”
예상대로 교재는 핑계였다. 어차피 못 외울 거라며 외우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다. 패배의식은 이렇게 아이들의 발을 묶는다.
“너희는 이 시간 동안 꼭 발표를 해야 해.”
평소와 다른 냉정한 목소리에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선생님께 혼나고 있다는 마음에 풀 죽은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수업의 규칙은 절대 흔들리면 안 된다.
난 아이들에게 성공의 경험을 꼭 만들어주고 싶었다. 실패도 괜찮다. 하지만 도전도 안 하고 포기한 기억을 쌓으며 ‘난 원래 그런 애야.’라는 마음을 갖게 하기 싫었다. 자기를 평가하지 말고,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도 경험과 연습이 필요한 법이니까.
아이들은 뒤늦게 감상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고요함 속에서 모두들 열심히 외우고 있을 때,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모기 물렸어요.”
모기만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는 말에 나는 생각의 틈 없이 아이의 팔에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여기도요.”
손가락에도 붙여주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저도 간지러워요.”
“선생님, 전 여기 연필에 긁혔어요.”
연필 자국도 안 보이는 팔을 내밀었다. 아이들에게 반창고를 일일이 붙여준 다음 더욱 힘차게 말해주었다.
“이제 한 명씩 해보자. 누가 먼저 나올까?”
목소리에 생기가 가득한 아이들은 너 먼저 하라고 나중에 하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차례대로 카메라 앞에 서서 발표를 했다. 먼저 끝낸 아이가 손으로 가슴을 쓸며 웃었다. 그 후 한 번도 긴장한 적 없었다는 듯이 다음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괜찮아. 너도 할 수 있어.”
손톱 끝이 까슬거려 아프다는 아이, 글을 많이 써서 손가락이 아프다는 아이, 종이에 손이 베어 아프다는 아이. 모두 정말 필요한 것은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이다.
‘선생님, 반창고 붙여주세요.’는
‘선생님, 저도 예뻐해 주세요.’와 똑같은 말이다.
수많은 아이들 중에 한 명이 아니라 특별한 아이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교실에는 항상 반창고를 준비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