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과 Jun 08. 2022

할머니 준비

혼자 살기로 했다(11)


나는 엄마의 나이로 살았다. 아주 오랫동안 그 마음을 살피고, 몸을 살피고 하다 보니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 몸이 짐작되고 감정이 옮겨와 깊이 박혀버렸다. 그러다 보니 차마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온통 할머니들 뿐이다.



어찌 보면 할머니에 대한 고정관념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버린 걸 수도 있다. 할머니란 아프고, 우울하고, 손이 많이 가는 존재라고. 그런 나의 고정관념을 비웃는 할머니를 만났다.


학원이 끝나고, 지하상가를 걷던 중이었다. 너무 밝고 너무 시끄러운 그 순간이 마법처럼 고요해졌다. 작은 키에 원피스를 입고 예쁜 모자를 쓴 할머니 한 분이 네일숍 의자에 앉아있었다. 등이 살짝 굽었고 머리카락은 온통 하얬다.

90 언저리로 보이는 할머니는 양손을 내밀어 손톱 관리를 받고 있었다. 함께 온 사람도 없었다. 할머니는 혼자였고, 직원은 할머니의 손톱에 예쁜 매니큐어를 칠해주고 있었다. 지하상가 네일숍에 앉은 할머니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나는 순식간에 이 백발의 숙녀에게 반해버렸다.



나는 할머니들을 보며 나의 미래를 미리 그려본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


어느 날은 요양원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가 건널목에 선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파란불에도 길을 건너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 눈치만 살폈다. 빨간 불이 되고 이리저리 부탁할 만한 사람들을 찾는 눈치에 가던 길을 돌아서 할머니에게 갔다.


“길 건너는 거 도와드릴까요?”


할머니는 시장에 간다고 길만 건너달라셨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꽉 잡고 천천히 할머니의 발에 맞춰서 길을 건넜다. 길을 건넌 후 시장에 혼자 가시는데 아이를 혼자 물가에 내놓은 것 같았다.


버스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허둥대는 할머니들만 보인다. 쇼핑카트에 물건을 잔뜩 담아 들고 오르지 못하는 할머니, 어디다 두었는지 헷갈려서 교통카드를 찾지 못하는 할머니.

허리가 굽은 채 유모차 손잡이를 잡은 할머니가 마트 앞에서 기웃대는 것을 보면 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유모차에 아이는 없다. 대신 누런 종이 박스가 누워있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누가 종이 박스 하나 드렸으면 해서 움직일 수가 없다.



난 엄마의 나이로 살았다. 지금도 그 나이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매일매일 일흔을 겪는 것 같다. 하루는 덩달아 쓸쓸하고, 하루는 덩달아 지겹다. 보이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다고 마음이 사라졌을 리가 없다. 그 마음을 매일매일 짐작하느라 노인이 된 것 같다. 그래서 매일 물었다.

왜 살아야 하지?


나이가 드는 것은 누구를 도와주기보다 누구의 도움받을 일이 더 많다. 자연히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를 끊임없이 부정하다가, 다시 조금이라도 찾으려 한다. 방법이 다르고 판단이 다를 뿐이다.

누군가는 아직 아름답기를 바라고, 다른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싶어 한다. 남의 손 안 빌리고 시장을 가고 식사를 만들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괜찮아요. 증명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까지 충분히 잘했어요. 이젠 그냥 쉬어도 돼요.’


그런 말들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자리가 있다. 다가오는 것보다 떠나가는 것이 더 많고, 포기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지니 빈자리도 많을 수밖에 없다.


‘괜찮아요.’ 대신 ‘고마워요.’가 어떨까 싶다.

존재하고 있어 줘서 덕분에 살만하다고,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말한다. 당신이 없었으면 큰 일 날 뻔했다고 엄살도 부리고, 고생하셨다고 노고에 대한 치하도 한다. 그 말을 엄마에게 할 때면 나도 듣는다. 그 말이 내 빈자리도 채워준다.



엄마와 앉았던 그 벤치에 가끔 혼자 가서 앉는다. 그럼 어느새 할머니들이 하나둘씩 나와 마늘도 까고, 쪽파도 다듬으며 앉아있다. 보면 하나 같이 빨간 꽃 모자, 분홍색 셔츠나 조끼를 입고 나온다. 마늘 까고 쪽파 다듬으려 벤치에 나오는 것이 왠지 출근한 직장인들 같다.

그러니 건강과 함께 아름다움도 챙겨드리자. 출근길에 기죽지 말라고 염색도 해드리고, 매니큐어도 칠해드리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팩도 해드리자.


매일매일 존재의 의미를 실천하는 할머니들을 만난다.

나도 그 틈에 껴서 할머니가 될 준비를 조금씩 한다. 적금을 들까, 보험을 들까 고민도 한다. 그러던 나에게 동인천 지하상가에서 마주친 그 할머니는 새로운 방법 하나를 제시했다.


할머니가 돼서도 좋아하는 것을 하겠다. 남에게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발버둥 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늙고 싶다.


글 쓰는 할머니면 꽤 괜찮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평범한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