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와 해석 사이의 균열에 대하여
입시는 공정해야 한다는 믿음은 이 사회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널리 퍼진 신념 중 하나입니다.
누구나 같은 시험을 보고, 같은 기준에서 평가받고,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는다는 전제 위에서 입시는 정의로움의 상징처럼 자리잡아 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입시는, 이 단순한 정의를 스스로 반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의 대학 입시는 더 복잡하고, 더 다양하고, 더 전략적인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정시와 수시라는 두 개의 큰 흐름 안에서도 수능 선택과목 구조, 표준점수 체계, 학생부 종합 전형의 비교과 요소와 면접 등은 학생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전략적 해석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2024학년도 수능 수학 영역의 선택 과목별 표준점수 최고점은
미적분 145점, 확률과 통계 134점으로
단 한 번의 선택이 최대 11점 차이의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같은 등급이어도, 실제 대학 합격선에서는 확연한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부 종합 전형 역시 명목상으로는 “학교 안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학생의 잠재력과 성장을 본다”는 취지지만, 실제로는 학교별 자원과 시스템에 따라 설계 가능한 비교과의 밀도 자체가 달라집니다.
서울 지역 고등학교의 평균 자율동아리 수가 비수도권보다 1.8배 이상 많다는 통계는
이 격차의 구조적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출처: 교육부 ‘고교 교육력 제고사업’, 2023)
학생이 쌓는 ‘기록’은 같은 제도 아래 존재하지만,
그 기록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가는 결코 같지 않은 조건 위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입시를 "제도"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입시는 단지 시험 제도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정보 해석력, 지역 자원의 차이가 얽힌 입체적 구조입니다.
표면적인 평등과 구조적인 불균형 사이의 간극.
입시가 공정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입시가 점점 더 "문제를 푸는 시험"에서 "구조를 해석하는 게임"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현실입니다.
같은 시험지를 받아들더라도,
누군가는 그 안에서 선택과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고,
누군가는 그 구조를 설명해주는 사람 없이 문제에 들어갑니다.
이 차이는, 제도 바깥에서 쌓이는 이해력의 차이이자 결국 입시의 결과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가 됩니다.
입시는 완벽하게 공정할 수 없습니다. 제도를 설계하는 사람들도, 그 제도를 따라가는 학생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입시를 완전한 평등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해석 가능하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정보가 아니라 기준을 제공하는 일.
정답이 아니라 방향을 찾는 일.
공정하지는 않지만, 불투명하지는 않게.
입시가 그런 구조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질문은
이제 제도 개선을 넘어, 해석력의 불균형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에 닿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