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방향
나는 오래전부터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무심히 들은 멜로디 한 줄, 무대에서 터진 조명과 함께 귀에 박힌 사운드, 안무의 한 동작과 맞아떨어지는 비트.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메모장과 녹음기를 번갈아 켰다. 처음엔 단순한 팬심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자 알게 됐다. 이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왜 이 장면이 사람을 사로잡는지’에 대한 관찰 기록이었다.
K-POP은 음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콘셉트, 퍼포먼스, 비주얼, 그리고 팬과의 서사까지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여야 한다. 나는 그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글로 남겼다. 그리고 깨달았다. A&R이라는 직무를 알기도 전부터, 나는 이미 그들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무대 뒤에서 만든 박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무대가 아니라 무대 뒤다. 컴백 하루 전, 마지막 리허설이 끝나고 팀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그 찰나. 신인 그룹이 첫 쇼케이스에서 긴장을 풀고 무대에 오르는 장면.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터지는 환호 뒤에 숨겨진 수많은 수정과 결정들. K-POP A&R의 역할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대중은 3분 남짓의 무대를 보지만, 그 뒤에는 수백 번의 ‘예’와 ‘아니오’가 있다. 어떤 곡을 타이틀로 할지, 어떤 가사를 쓸지, 후렴을 한 박자 늦출지 말지. 나는 그 결정의 순간들을 소비자의 시선이 아닌 기획자의 시선으로 기록해왔다. 첫 10초에 귀를 붙잡는 비트, 다리 안무와 코러스가 동시에 터지는 타이밍, 팬덤의 밈이 될 수 있는 가사 한 줄. 이런 것들을 언어로 풀어내면 다음 선택의 근거가 된다.
기록이 만드는 기획
K-POP은 속도가 빠르다. 트렌드는 계절보다 짧고, 바이럴의 파도는 예고 없이 온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변하지 않는 법칙이 있다. 서사의 힘과 감정의 결. 나는 그 법칙을 찾기 위해 곡, 안무, 무대, 팬 반응까지 통째로 기록했다. 어떤 곡은 ‘챌린지’가 붙으며 날아올랐고, 어떤 퍼포먼스는 해외 팬들의 리액션 영상 속에서 더 큰 생명을 얻었다. 이런 데이터와 감각을 엮으면, 다음 프로젝트에서 더 빠르고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다.
A&R은 감성을 수치로 바꾸고, 그 수치를 다시 감성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나는 그 과정을 오래전부터 혼자 해왔다. 취향을 분석하고, 분석을 다시 직감으로 돌려놓는 방식으로.
앞으로의 문장들
이제는 단순히 쓰는 것이 아니라, 쓰는 과정을 훈련으로 삼고 있다. 장르별 사운드 결의 차이, 가사와 멜로디의 감정 곡선, 뮤직비디오 컷과 퍼포먼스 동선의 시너지. 이런 것들이 내 기록 속에서 하나의 설계도로 완성된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면, 그 사람은 알게 될 것이다. 이 글들이 단순한 팬의 기록이 아니라, 기획자로서의 시선이 형성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쯤이면, 나는 무대 뒤에서 누군가의 음악을 세상에 보내고 있을 것이다. 세계를 향해 확장되는 K-POP의 다음 장면을, 기록에서 출발해 기록으로 완성하는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