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학교는 강남 8학군 중 한 고등학교였다. 어깨동무하며 공을 차고 함께 웃던 친구들의 어깨 위엔 어느새 입시라는 무거운 짐이 올라앉아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학교 분위기는 내가 알던 것과는 사뭇 달라졌다. 담임선생님의 군기 잡기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우리 반 학생들에게 0교시에 등교하라고 했다. 반에서 조금이라도 튀는 학생이 있다면 그 아이는 단속 대상이 되었다. 흔한 매질과 윽박지르는 폭력이 수반되었다.
‘학기 초에 분위기를 잡아놓는다’는 것이 고3 학생을 조련하는 선생님의 철학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평범했기에 모두들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무렵, 우리 집의 형편은 어려워져 성남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매일 등하교에 한 시간이 걸렸다. 친구들이 입시에 집중하듯, 악기를 전공하던 나는 늘 악기를 들고 다녔다. 방과 후 레슨을 받아야 했기에 악기를 집에 두고 올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악기는 항상 교실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장교 출신이던 담임선생님은 권위적이고 엄격했다. 당시에는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에 대한 편견이 강했다. 소위 "딴따라"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0교시가 시작되자 선생님은 악기를 가져온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나는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공부에 방해된다며 악기를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그때의 나는 설익은 꿈을 비웃는 시선과 측은하게 보는 시선이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었다. 반골기질과 억울함이 마음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저도 똑같이 입시 준비하는 건데요. 저희 집이 성남이라 악기를 두고 올 수 없어요.”
“얘네만 대학 가야 되는 거 아니잖아요. 저도 제 꿈을 준비하고 있어요.”
사실 다른 반에 맡기거나, 친구 집에 두는 선택지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집스럽게 반항했다.
선생님은 본보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반 친구들 앞에서 나는 뺨을 맞고 주먹질과 함께 모욕을 당했다. 한껏 내리눌렀던 자존심은 무너졌다. 결국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교실에는 선생님의 고함과 폭력의 소리만 울렸다.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친구들조차 숨죽였다. 붉어진 뺨을 부여잡고 조용히 책상에 앉았다. 친구들은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일상은 나를 두고 다시 천천히 굴러갔다.
분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가장 친한 친구녀석과 양재천에 앉아 하소연을 했다.
우리나라 입시제도에 대한 불만, 권위적인 선생들의 작태, 폭력, 편견...
속안에 있던 내 응어리를 쏟아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친구는 이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는 의외의 말을 했다.
“환경을 탓하지 마. 변하지 못하는 너 자신을 탓해.”
황당했다.
‘나를 탓하라고?’
불합리한 폭력과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친구의 말은 또 다른 폭력처럼 느껴졌다. 억울함이 차올랐다. 한참을 씩씩거리며 친구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다. 친구는 다시 말없이 들어주었다.
속상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서히 감정이 누그러진 후에야 친구의 말이 맴돌았다.
친구는 내가 벽 안에 갇혀 신세 한탄만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은 정말 나를 위한 칼 같은 조언이었다.
그때서야 내 세상이 확장되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가득했던 그 학교를 떠나는 결정을 했다. 실용음악과가 있는 직업학교로 위탁교육을 선택했다. 치열한 경쟁률을 운 좋게 뚫고 입학에 성공했다. 그곳에서야 비로소 음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흘러간 고3이었다.
시간이 흘러 2학기가 끝나갈 즈음, 그 담임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
“시간 괜찮을 때 기타 좀 알려줄 수 있겠니?”
그 순간, 내 마음은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희미해지던 상처는 다 나았고,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되었다.
누군가는 변화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무너지고, 누군가는 바꿀 필요 없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당연한 불합리함과 어쩌면 팽배한 편견속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경우의 수 속에서 살아간다.
환경을 바꾸라는 건방진 글이 되고 싶지는 않다. 무엇이 맞고 틀리다고 재단하고 싶지도 않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소설 《데미안》 속의 편지처럼, 지금 나는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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