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무렵,
인천의 허허벌판 위에 덩그러니 세워진 신축 대단지 아파트로 우리 가족은 이사했다.
삶의 균열이 아직은 크게 벌어지지 않았던 때였다.
행복이 일상이던 나날들.
평일과는 다른 햇살이 평화롭고 따뜻하게 내리쬐던 일요일 아침,
뚱뚱한 브라운관 TV 앞에 앉아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고 있으면
느지막이 눈을 뜨신 아버지가 부산스레 아침을 준비하셨다.
만화를 다 보고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아버지의 거칠고 뭉툭한 손이 툭툭 끊어내던 수제비 반죽이
냄비 속에서 풍덩풍덩 빠져들어 익어갔다.
뜨거워 호호 불며 정신없이 먹던 그 수제비의 맛,
지금도 혀끝에 생생하다.
아침 식사가 정신없이 흘러가고,
햇살이 세상을 가장 높은 곳에서 비출 무렵,
아버지는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해 쇼파에 누워 코를 고르셨고
어머니는 밀린 빨래를 정리하며 부지런히 움직이셨다.
심심함을 견디지 못한 나는 누나의 방을 기웃거리며 졸졸 따라다녔다.
누나는 퉁명스러운 척하면서도 결국 나를 맞아주어
어린 나와 한참을 어울려주었다.
그렇게 함께 보낸 오후,
그 평범하고 따뜻한 일요일들이 가슴속에 있다.
삶이 때로는 거칠게 나를 흔들어댈 때마다,
그날의 일요일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싱그러운 공기와 항상 궁금했던 아파트 단지 내 상가들.
빵 냄새가 퍼지던 빵집, 나른한 오후를 채우던 만화책 대여점,
그리고 왠지 모를 호기심을 자극하던 작은 문구점들.
따스한 베란다로 나가 커다란 창문을 낑낑대며 열고
밖을 보고 있자면 펼쳐지던 수많은 상상들.
그 순간들은 내 마음속 한 편의 단편영화처럼 고이 간직되어 있다.
영화 초록 물고기에서 한석규 배우는 공중전화 속에서
인간으로써의 마지막 순간 형에게 전화를 걸어
물고기 잡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내가 그 공중전화 속 사람이라면,
나는 그날의 일요일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마음 깊숙이 담아두었다가,
가끔은 버거운 삶의 한가운데서 조심스레 꺼내어 보는 그날의 기억.
여러분에게도 이런 순간은 있겠죠?
어떤 날을 간직하고 계신가요? 진심으로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