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친구, 스승과 제자라는 카테고리로 나누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카테고리로 정의할 수 없는 둘만의 관계와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나의 관계 이야기다.
그 친구와 나는 직장 동료로 만났다.
우리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타지로 나가 함께 먹고 자며 일했다.
수입이 없었다. 새로운 도전이었기에.
힘든 시절, 우리는 돈 없이 함께 굴렀다. 내 주머니에 만 원이라도 생기면 그 친구는 미안해하며 "형이라도 혼자 먹어"라며 밥을 권했다.
하지만 우린 당연히 같이 백반집에서 밥을 먹었다.
어리석게도, 돈이 없으면서 담배는 또 얼마나 피우고 싶었던지. 길바닥에 장초가 있나 두리번거리던 우리 모습이 떠오른다.
손님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차비가 없어 하염없이 걸어가 손님을 만나고, 멋진 세일즈맨인 척 연기하곤 했다. 터덜터덜 걸어 돌아오면서도 서로 의지하며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무모했던 우리의 도전은 그해 여름을 버티지 못하고 끝이 났다.
우리는 가난함을 이기지 못하고 헤어졌다.
몇 년 뒤, 내가 일하는 곳으로 그 친구가 찾아왔다.
몇 년 만에 만난 그 친구는 꽤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멋진 차를 타고 와서는 결혼한다며 축하해달라고, 축가를 부탁했다.
나는 부담스러운 마음에 한사코 거절했지만, 간곡한 부탁에 용기를 냈다.
그 친구는 그 시절 우리가 가난 때문에 이별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며, 자신의 사업에 와서 일하라는 제안을 했다.
나는 고민이 많았다. 현재의 일이 자리 잡아가는 중이었지만, 그 친구에 대한 믿음과 함께 제시한 비전의 달콤함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친구의 사업체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세상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온 직후, 그 친구의 사업은 동업자와 삐걱거렸고,
나는 타지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동안 고생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롭게 사무실을 열고 비전을 공유하며 1년 동안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가족보다 가까웠고, 친구보다 더 깊이 마음을 나눴다.
그 친구가 웃으면 나도 웃을 수 있었다.
그 친구가 슬퍼하면 나 또한 슬퍼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세상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사업은 점점 힘들어졌고, 소통은 줄어들었다.
그 친구의 태도는 점점 변해갔고, 나 역시 지쳐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직장 동료에서 형, 동생으로, 그리고 사장과 직원으로 변했던 마지막 인연의 끝에서, 우리는 이별했다.
사업은 어려워졌고, 우리는 서로를 원망하며 끝을 맺었다.
누구의 잘잘못인지 가리지 못하고 참았던 설움이 터져나오듯 서로를 끊어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친구와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막상 글을 쓰려니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느낀다.
그 친구를 떠올리는 것이 아직 많이 아프다.
내 감정을 정리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키보드 위로 손을 억지로 올리고, 손이 가는 대로 글을 써내려갔다.
함께 고생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의 우리는 지금과는 참 많이 달랐다.
여전히 그 친구가 원망스럽지만, 이제는 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세상을 살다 보면 인연이 내 뜻대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한 정답이 정답이 아닌 경우도 많다.
소통만 잘하면 어떤 관계든 좋은 관계가 될 거라 믿었는데, 그것조차도 아니었다.
끝나는 인연은 천재지변처럼 예고 없이 끝나버리더라.
내가 태풍을 막을 수도, 내리쬐는 햇살을 막을 수도 없는 것처럼, 막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끝이 나버렸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보내주자. 잊자. 그리고 그 친구의 행복을 빌어주자.
그리고 나는 또 걸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