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우리는 모두 황당한 연말을 맞이했다.
연일 미디어에서는 상황을 놓치지 않으려 부단히 보도했다. 수많은 드라마들이 연출되었다. 미디어가 의도한 드라마도 있었고, 시대가 낳은 여러 장면들도 있었다. 환율은 치솟았고, 내년의 경제를 어둡게 전망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격동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스멀스멀 환멸감이 올라왔다.
지하철 안. 자리는 모두 꽉 찼고, 손잡이에 매달린 사람들 역시 흐느적거리는 몸을 지탱하느라 고개를 떨군 채였다. 대부분의 시선은 각자 손에 쥔 작은 사각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쪽에서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젊은 남성이 게임 화면에 몰두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 어머니가 영상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 옆자리에는 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핸드폰을 다루는 데 서투른 듯 화면을 계속 눌렀다. 답답한 마음에 그는 한숨을 쉬며 화면을 내려놓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별다른 관심 없이 지나쳤다.
나 역시 같은 작은 화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화면 속에서 쉬지 않고 올라오는 뉴스 알림은 마치 소용돌이 같았다. 비상계엄, 경제 위기, 환율 상승. 혼란스러운 단어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뒷목이 뻑뻑해져 그제서야 시선을 떼었다.
지하철역을 나온 후 거리를 걷던 나는 문득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두꺼운 패딩을 여미며 걷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삶의 무게가 배어 있었다.
한 할머니의 커다란 리어카가 위태롭게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발이 느려 신호가 끝나갈 때쯤 길 한가운데에 남았지만, 학생 무리들이 뛰어들어 리어카를 함께 끌어주었다. 그러고선 지들끼리 깔깔거리며 또 부지런히 뛰어갔다.
또 다른 장면도 떠올랐다. 길가의 노점에서 붕어빵을 팔던 한 아저씨는 손을 호호 불며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붕어빵을 건네고 있었다. 볼은 얼어붙은 듯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그의 얼굴에는 묘한 열정이 서려 있었다. 건네받은 손님이 손에 있던 음료를 전하자, 아저씨는 빨개진 볼로 고맙다며 웃어 보였다.
새삼스러운 일상속에서 감동을 느꼈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 그것 자체가 얼마나 찬란한지.
뉴스에서는 문제점을 보도하지만, 길 위의 사람들 속에서 문제와는 상관없이 뜨겁게 살아가는 강인함이 있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도 의연히 나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나는 희망을 느낀다.
올해가 아무리 힘들고 황당한 연말로 끝나도, 내년엔 더 희망으로 가득 차길 바란다.
우리 모두 너무나 유약하지만, 걸어갈 수 있는 희망은 가득 있기를.
매일 같이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그들에게
희망과 행복이 아쉽지 않게 찾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뜨겁게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