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2-2. 지워지는 기억의 터: 둥지를 잃은 이들의 흔적

by 도시와 사유
인왕산.jpg 홍제동 267-1번지 일대 재개발을 위해 비어진 집. (사진: 도시와 사유)


재개발 현장의 공허함은 단순히 건물이 사라진 물리적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텅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질문,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무거운 물음이다. 포클레인이 땅을 파헤치고 낡은 집들이 먼지 속으로 사라진 뒤, 우리는 그곳에 세워질 새로운 건물의 화려한 조감도를 보지만, 그 땅에서 밀려난 이들의 행선지를 알려주는 지도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도시의 익명성 속으로 흩어지고, 그들의 이야기는 개발의 청사진 아래 잊힌다.


둥지를 잃은 이들의 흔적을 쫓는 일은, 마치 유령을 뒤쫓는 것처럼 막막하다. 그들이 남긴 것은 떠난 뒤의 부재(不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철거 직전의 동네를 걸으며 그들이 남긴 마지막 흔적들을 수집했다. 이삿짐센터의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낡은 대문, 급하게 떼어 가느라 반쯤 찢어진 채 남은 아이의 상장, 주인을 잃고 마당을 뒹구는 낡은 장난감. 이 모든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 이곳에 분명한 삶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아픈 증거들이다. 심지어 전봇대에 붙어있는 낡은 동네 학원의 광고지, ‘누구누구네 집’이라고 쓰여있던 작은 팻말 하나하나가 이제는 돌아갈 곳 없는 이름이 되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인왕산2.jpg 홍제동 267-1번지 일대에서 35년 넘게 자리를 지킨 상가의 모습. (사진: 도시와 사유)


특히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던 것은, 떠난 이들이 남긴 글씨들이었다. 굳게 닫힌 상점 셔터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서툴게 쓴 작은 메모는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켰을 주인의 마지막 인사였을 것이다. 어느 집 담벼락에는 “꼭 다시 만나자”고 쓰인 낙서가 남아 있었다. 아마도 헤어짐을 아쉬워한 어린 친구들의 약속이었으리라. 이 짧은 문장들은 재개발이 단순히 낡은 집을 허무는 행위가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인간관계의 망을 강제로 끊어내는 폭력임을 실감하게 했다.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단골 가게에서 물건을 사며, 아이들이 함께 자라던 공동체의 유기적인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해체되어 버렸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일부는 보상금을 받고 인근 지역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생을 살아온 터전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아올랐고, 많은 이들은 정든 동네를 떠나 더 낯설고 먼 곳으로 밀려났을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곳에서 다시 뿌리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을 테고, 그 과정에서 지난 시절의 기억은 희미해졌을지 모른다. 혹은, 잊으려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이주 과정은 단순히 주소지를 옮기는 행정적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세계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사건이다. 오랫동안 다녔던 병원, 매일 장을 보던 시장, 아이의 친구들, 힘들 때 술 한잔 기울이던 이웃과의 관계가 모두 단절되는 경험인 것이다.


결국 도시는 떠난 이들의 기억을 보존하는 데 인색하다. 그들의 삶은 통계 자료 속 ‘이주민’이라는 차가운 단어로 남을 뿐, 그들이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이별을 겪었는지는 기록되지 않는다. 둥지를 잃은 이들의 흔적을 쫓는 나의 발걸음은, 이처럼 도시의 공식 역사에서 지워진 개인들의 서사를 복원하려는 서툰 노력이다. 비록 그들의 행선지를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남긴 작은 흔적들을 그러모아 그들의 부재를 증언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거대한 개발의 논리 앞에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며, 사라진 것들을 애도하는 우리 시대의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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