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지워지는 기억의 터: 장소에 깃든 집단 기억의 소멸
기억은 어디에 깃드는가. 그것은 낡은 앨범 속 사진이나 박물관의 유물처럼 박제된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소리, 냄새, 빛과 같은 지극히 감각적이고 비물질적인 형태로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한 장소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공동체의 무의식을 형성한다. 성동구 왕십리에 있었던 안정사(安貞寺)의 종소리는 바로 그런 기억의 매개체였다. 이제는 사라진 그 종소리는, 재개발이 앗아가는 것이 비단 낡은 건축물만이 아님을, 소리 없는 소멸이 얼마나 깊은 상실을 남기는지를 아프게 증언한다.
나에게 안정사는 구술로만 전해 듣던 희미한 존재였다. 2009년 철거되기 전까지 왕십리의 아침과 저녁을 열고 닫았다는 그 종소리를, 나는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 소리를 들으며 자란 이에게, 안정사의 종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네의 시간을 알리는 거대한 시계이자, 삶의 배경음악이었으며, 보이지 않는 질서를 부여하는 공동체의 약속이었다. 아이들은 종소리를 들으며 학교 갈 시간을 짐작했고, 어른들은 고단한 하루의 끝을 실감했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면 평소와 다른 장단으로 울렸을 종소리는, 주민들의 기억 속에 특별한 날의 감정과 뒤섞여 각인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장소에 깃든 소리는 사람들의 기억과 결합하며 강력한 ‘장소감(Sense of Place)’을 형성한다. 안정사의 종소리를 들으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했던 왕십리 주민들은, 소리라는 무형의 고리를 통해 느슨하지만 분명한 공동체 의식을 공유했다. 그들에게 ‘왕십리’는 행정구역상의 명칭을 넘어, 안정사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공간적 범위이자, 그 소리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영토였을 것이다. 종소리는 동네의 공기처럼 당연하게 존재하며 그들의 삶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누구도 그것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거대한 재개발의 논리 앞에서 소리의 기억은 무력했다. 안정사는 새로운 아파트 단지를 위한 대지 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물리적인 건물의 소멸보다 더 깊은 상실은, 그날 이후 동네를 감쌌을 거대한 침묵이었을 것이다. 더 이상 아침을 깨우지도, 저녁의 안식을 알리지도 않는 그 침묵은, 단순히 소리의 부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동네의 리듬이 끊어지고, 집단 기억의 구심점이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이제 왕십리의 시간은 개별 가구의 알람 시계가 제각각 알릴 뿐, 동네 전체를 아우르던 공동의 시간 감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 아픈 것은, 이 소멸의 과정이 너무나 조용히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는 건물의 철거는 갈등과 기록을 남기지만, 소리의 사라짐은 그 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내면에서만 이루어지는 조용한 해체다. 새로운 아파트에 입주한 이들에게 왕십리는 그저 편리한 교통과 높은 시세를 가진 주거지일 뿐, 그 땅에 안정사의 종소리가 깃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세대가 바뀌고, 옛 주민들이 흩어지면서, 안정사의 종소리에 대한 기억은 이제 몇몇 개인의 희미한 추억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집단 기억이 개인의 기억으로 파편화되고, 이내 완전히 소멸해버리는 것이다.
결국 안정사의 사라진 종소리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도시의 무엇을 보존하고 기억해야 하는가. 눈에 보이는 문화재나 역사적 건축물만이 보존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한 동네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렸던 소리와 같은 비물질적 유산의 가치를 우리는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가. 안정사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침묵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너무나 쉽게 놓치고 있는 것들의 무게를 되새기게 하는 무겁고 긴 여운이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지워진 기억의 터를 향한 우리 시대의 애도 방식을 고통스럽게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