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길고도 험난하다.
7년 전 학교를 그만 두고 나와 다단계 영업을 하다가
2020년에 코로나 사태를 맞으면서 다단계 영업을 접고
무엇을 할까 하다가 기간제 교사로 다시 학교에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학교를 그만둘 때는 그렇게도 다니기 싫었던 학교가
내 발로 돌아갈 때는 그 발걸음이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감사했다.
생활비를 벌 수 있었고 그때 당시 어렸던 쁘나를 키우기 위해서도
학교라는 직장은 꽤 괜찮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학교는 퇴근시간이 4시 반으로 아주 빠르고 방학이 있기 때문이었다.)
1년만 일해야지 하고 다시 들어간 학교에서 나는 또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학교를 그만 두기 전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모두다 시골의 작은 소규모 학교였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게 된 학교는
그때 살던 도시에서 가장 큰 학교 중 하나였다.
또 다른 점은 시골학교의 학부모님들은 생계가 바빠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도시의 학교는 그 교육열이 대단했다.
나는 그 교육열이 좋았다.
실시간으로 소통되는 학부모님들과 공부에 진심인 학생들이라니!!!!
내겐 꿈의 학교였다.
8년동안 근무하면서 학교는 정말 재미없어,
아이들 가르치는 건 정말 재미없는 일이야 하면서 꾸역꾸역 다녔던 예전과 다르게
그 일년은 출근하는 아침이 즐거울 정도로 아주 신세계 같은 경험이었다.
나 사실 학교랑 잘 맞는 거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도 잠깐 들었을 정도로(;;)
그래서 기간제 교사로 1년을 더 다녀보기로 했다.
2년의 시간동안 다시 하게 된 학교생활을 통해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었다.
역시 학교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
더 중요한 건 교사였던 내가 그렇게 최악의 교사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학교를 그만 둘 때 나는 나 스스로 나는 정말 최악의 교사야,
나는 가르치는 일에 정말 맞지 않아, 나에게 배운 학생들은 정말 불행해,
나에 대한 실망감,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넘어선 경멸의 감정을
그 2년동안 많이 해소할 수 있어서
예전처럼 학교를 떠올리면 욕이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그곳은 나랑 맞지 않았던 곳이야, 나는 학생들에게 최악의 교사는 아니었어 라는
선선한 감정과 조그마한 자기 만족이 예전의 학교생활에서 받았던 상처를 치유해주었다.
학교에서 받은 상처를, 학교에서 치유했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말이다.
삶이 이렇다.
사람에게서 상처도 받지만, 치유도 받는다는 것.
모든 것을 하나로만 정의하고 단정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
이것은 2년 간의 기간제 교사 생활 동안 얻은 아주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그런데 학교생활은 나와 맞지 않지만,
아이들은 좀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여운 약자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어른들로부터 갑질을 당하는 아이들이
불쌍했다.
이 감정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왜 나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직감을 매우 믿는 편이고
어떠한 생각이 들면 바로 실행하는 스타일이라
바로 보결교사 공고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까운 지역에 보결교사 공고문이 뜬 것을 보고
보결 교사를 지원해서 1년을 근무하게 되었다.
보결 교사라 함은 담임교사나 학교의 교사 중 병가나 연가, 출장 등 다양한 이유로
아이들 수업이 어려울 때 임시로 그 반에 들어가서 수업을 해주는
말그대로 교사의 결석을 보충해주는 교사이다.
보결교사는 정해진 반이 없이 그날그날 보결 신청이 들어오면
그 반 수업을 담당하므로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직이었다.
보결교사로 근무하면서 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만 만나는 경우도, 며칠을 만날 때도 있었고,
담임교사가 병가를 길게 쓸 때는 몇 달을 만나기도 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사건은 보결교사가 된지 한달여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에 터졌다.
내가 보결 수업을 들어간 반에 가정학대를 당한 아이가 있었던 것이다.
사건의 요지인즉 국어 수업시간이었는데 경청에 대한 단원이었다.
아이들에게 "너희들, 부모님 말씀 잘 경청하니? 부모님은 너희들 이야기에 경청해주시니?" 하는
아주 사소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부모님 말씀 잘 듣냐는 내 질문에는 시큰둥하던 아이들이
부모님으로 그 타켓을 옮기니 너도나도 손을 들고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부모님은 우리들 말을 경청해주지 않는다, 불만이다 라는 게 요지였다.
40분 수업 시간이 아이들의 가정사 발표(?)로 순식간에 지나가고
나부터 경청을 잘 해보자 하고 급박하게(?) 마무리하고 쉬는 시간이 되어 정리하고 있는데
한 여자아이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와
"선생님, 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아, 이거 심각한 이야기겠구나.' 싶었다.
이야기인즉 부모님 사이가 매우 좋지 않고, 그 기간이 오래되었다는 것이었다.
밤마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데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엄마는 정신과약을 드시는데
아이 앞에서 자살시도도 했었던, 아주 심각한 아동학대 이야기였다.
아이는 이미 고학년이라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다음 시간이 체육이라 체육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그 아이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았다. 쉬는 시간 10분만에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내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그 아이의 상황과는 다른 점도 있었지만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은 동일한 점이었다.
이 아이를 도와야한다, 내 안에서 강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고작 40-50분간 들은 이야기로 무언가를 행동하기가 어려워
아이에게 일주일동안 너가 할 수 있는 뭘까 생각해보자,
그리고 집에 가서 이것저것 해보고 다시 이야기해보자, 하고
일주일의 시간이 흐른 후 그 아이를 다시 만났다.
일주일동안 부모님께 싸우지 말아달라고 말도 해보고,
엄마를 위로해보기도 하고, 아빠에게 애교도 부려보고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부모님 관계는 똑같았을 뿐이었다.
아이에게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어봤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동학대 신고, 부모님 면담,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기 등등 이런거야,
너 어떻게 하고 싶어? 내가 어떻게 도와줬음 좋겠어?
아이는 나에게 신고를 부탁했다.
이러다가 엄마가 죽거나, 아빠가 죽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교육과 관려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지체없이 신고를 해야하는 게 맞다.
막상 이러한 일을 맞닥뜨리니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까 굉장히 고민이 되었다.
아이에게 아동학대 신고를 하게 되면 일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일련의 흐름을 설명해주고(고학년이었기 때문에)
이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한 후 아동신고 전화를 했다.
그 이후 일어난 일은 자세히 쓰진 않겠지만 아이의 가정일은 원만히 해결되었고
그 이후로 나는 그 아이가 집에서 잘 지내는지
보결교사를 하는 동안 계속 확인하는 시간을 보냈다.
신고를 하고, 경찰관을 만나고,
일련의 일을 처리한 후 집에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탔는데
눈물이 너무 났다.
이 눈물은 뭘까. 왜 내가 눈물이 날까.
지금 두렵고 괴로운 건 그 아이일텐데.
이 눈물의 정체를 나는 알아야만 했다.
집에 가는 동안 내내,
집에 들어가서 남편과 아이 앞에서 한 시간을 넘게 울고나서
나는 내 눈물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너무 바빠서, 두 분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사는게 너무 힘드셔서
본의 아니게 나에게 했던 행동들이
사실은 아동학대에 가까운 행동이었고
나는 그 어른 시절에 참 괴롭고 힘들었었구나,
나 또한 누군가가 나를 좀 도와주기를,
이 괴로운 시간을 누군가가 해결해주기를 바랐었구나,
그런데 그 과거의 시간은 지나갔고
나는 커버렸다.
어른이 된 내가,
아직 그 상처를 갖고 있는 내가,
그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내가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것,
어린 시절 상처가 직접적으로 치유되지 않아도
내가 누군가를 도와줌으로써 치유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왜 아이들을 불쌍하게 생각했는지 그 답도 알게 되었다.
바로 내 어린 시절을 아이들에게 투영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바빠서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던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내 내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나와 비슷한 상처가 아이들에게 보이면 나는 어찌할바를 모르게 되었던 것이다.
나처럼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담임교사로서는 자신 없지만
잠깐씩 보는 임시 교사로 많은 아이들을 만나보면 어떨까,
그러한 마음이 저 깊은 곳에 숨어
나를 이렇게 끌었구나,
학교는 그만두고 싶은데, 아이들은 보고 싶다는 그 마음은 왜 드는 거지?
나조차 나를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했다고?)
그게 이거였구나를 알게 되니
내 마음이 가여워졌다.
자가 치유를 이렇게라도 하려고 했구나.
그렇게 보결교사 2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내 어린 시절의 상처가 간접적으로 많이 치유되었다.
마음의 상처가 조금 치유되고 나니
내 상처를 직접적으로 들여다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전까지는 두려워서,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가슴아프고, 회피하고만 싶었는데
2년의 시간동안 아이들을 돌보면서 내게 치유의 힘이 생긴 것이다.
누군가는 그럼 예전에 학교생활할 때, 기간제 교사로 아이들 만날 때는 왜 치유가 안 되었어요?
라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나조차 정말로 뭐가 다른 걸까 깊이 생각해보았다.
예전의 학교생활은 엄마의 권유로 하게 된 일이지, 나는 이 일을 원했던 적이 없어,
투덜투덜, 불평 불만에 사로잡혀 그 일을 마지못해 꾸역꾸역 했었다.
그때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기간제 교사 시절에는 내가 그렇게 쓰레기 같은 선생님은 아니었구나,
조금씩 자기 효능감을 느낀 시간들이었다면
보결 교사 생활은 온전히 아이들에게 집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이 아이들을 돌봐야해,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나는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에 집중했던 시간이었던 것이다.
장소는 똑같지만 내가 목표로 삼았던 일은 이렇게도 차이가 컸던 것이다.
장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 이게 핵심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나의 위선(강자이면서 강자가 아닌 척 하는)도 분명히 있었고
내 상처를 직접적으로 치유할 수 없어서 (회피 중이었기 때문에)
옹졸한 자기만족을 위한 것도 분명히 있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진실로 건강한 나로,
나를 치유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치유가 된 부분도 있지만
위선도, 자기만족도 이제 그만 해야지,
그만 할 수 있게 될 정도로 나는 괜찮아졌다.
충분히 다 했기 때문에 정말로 이제 그 어떤 후회도, 미련도, 분노의 감정도 없이
정말로 학교를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내 사직서는, 7년 전이 아니라, 진정한 사직서는 지금 낸 것이리라.
나는 이제 나 자신에 대해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제 충분히 직면할 수 있는 용기도, 경험도, 상황도 마련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라는 생각에,
또다시 지나간 과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든다.
과거에 대해 항상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예전의 나,
이제는 감사한 마음으로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나,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변화다.
뭐, 이건 나 혼자만 느끼는 개벽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