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by 사춘기 엄마

어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는 요양병원에 수년을 계셨다.

점점 마르고 식사를 못 하시게 되더니

결국 어제 새벽

요양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아침에 강아지 산책을 하고 들어왔는데

문자가 들어와 있어

아침 새벽부터 무슨 문자지?? 했는데

아빠로부터 온

부고 문자였다.


아빠는 아직 엄마한테

이야기를 못 했으니

기다리라고

짧막한 메세지를 보내셨다.


엄마는 괜찮으실까

걱정이 되었다.


9시가 넘어 아빠께 연락드리자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우리보고는 오후쯤에 장례식장으로 오라고 하셨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오랜만에 보는

외갓집 식구들


그리고 영정사진으로 뵙는 외할머니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별로 없다.


20여년 전 형제간 돈 문제로 인해

엄마와 외삼촌들간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

엄마는 10년의 세월동안 외갓집을 가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언니, 오빠, 나 모두 외갓집을 가지 않게 되었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후에 언니가 우리끼리만이라도 외갓집을 가보자고 해서

대학생 때 한번

30대 들어 한 두번이 다다.


더 어렸을 때는 명절마다

외갓집을 갔으나

그 기억은 너무나도 멀어서

내게 외갓집 식구들은 아주 먼 느낌이었다.


장례식장은 첫날이어서 그런지 아주 한산했다.


우리는 엄마, 아빠와 한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생각보다 침착하셨다.


할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신건지,

임종은 누가 지킨건지,

나는 궁금한 게 많았고

엄마, 아빠는 차분하게

내 질문에 답해주셨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주말에

엄마, 아빠께서는 할머니를 보러

병원에 다녀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 전에는 엄마, 아빠가 가시면

"자네 왔는가."하시면서

할머니를 위해 챙겨간 음식도

잘 드셨다는데


지난 주말에 할머니는 말도 못 하셨고

물도 삼키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고 했다.


그때 엄마, 아빠는

할머니의 임종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셨다고 했다.


엄마는 그날도 할머니를 보면서

많이 우셨고

그전에도 할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울어서

오히려 지금은 눈물이 안 난다고 하셨다.


그전에 이미 너무 많이 운 것이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해주셨다.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정말로 고생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


나에게는 그래도 다정하고

젠틀한 이미지였던 외할아버지가

젋은 적에는

술만 마시면 할머니를 때리고

폭언을 하셨다는 이야기,


큰 외삼촌, 둘째 외삼촌을 낳고

셋째 아들이 태어났는데

바로 엄마를 임신하데 되어

젖이 나오지 않아

셋째 아들을 잃을 수 밖에 없었던

할머니의 가련한 처지에 관한 이야기,


엄마 또한 젖이 나오지 않아

할머니가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어

포대기에 아기를 싸서

문가에 죽으라고 내놓았는데

아침에 보니

포대기 안에 아기가 똘망똘망

할머니를 쳐다봐서

마음을 고쳐먹고

엄마를 살리기 위해

없는 살림에 병원을 데리고 다니며

엄마를 키웠다는 이야기,


8살 어린 막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는 농사지으러 나가야 했으므로

그 아이를 초등학교 1학년생이었던

엄마가 업고 키웠는데

몸이 약했던 엄마가 아기를 업고 키웠으니

몸이 아파서 초등학교를 거의 다닐 수가 없었는데

가끔씩 끙끙 앓다가

이부자리에서 눈을 뜨면

할머니가 엄마 입에 한약을 떠넣어줘서

그나마 살수 있었다는 이야기,


형제들 간 사이가 틀어져

엄마가 외갓집을 안 갈 때

하늘에서 큰 십자가가 떨어져

외갓집 논자리에 쾅쾅 박히는 무서운 꿈을

반복해서 꿨었다는 이야기 등등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할머니가 불쌍하다고 했다.


멀게만 느껴지던 할머니였는데

엄마 이야기를 듣다보니

할머니 인생이 너무나도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엄마의 인생도

할머니 인생만큼 애처로웠다.


큰아들 밖에 모르던 할머니 때문에

엄마는 커서

할머니의 관심사 밖의

딸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할머니는 왜 그러셨을까

이해가 안 된다고 하자

엄마는 담담하게

그 시절은 다 그랬다고

체념 섞인 목소리로 말하셨다.


한 인간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내 기억 속 할머니,

엄마의 이야기 속 할머니,

내가 아는 건 이것 밖에 없지만

그래도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글로 적어 남겨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평안히 잠드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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