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바니안 인형들아, 안녕?

결핍과 소유욕, 물질 탐욕의 끝은 무엇인가.

by 사춘기 엄마

남편과 나는 결핍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결핍의 양상은 비슷한 듯 달랐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 아빠와

함께 축제를 간다던지

어딘가를 놀러가지 못했었던 게 결핍이 되었고


남편은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갖지 못했던 것,

어머님이 해주신 건강한 음식만을 먹어야 했던 것이

결핍으로 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쁘나를 낳았을 때

쁘나에게 그 모든 것들을 해주는 방향으로

우리의 결핍을 채우려고 했다.


나는 쁘나를 데리고

여러 축제들을 다니면서

그곳에서 파는 음식, 체험들을

원없이 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남편은 쁘나가 지나가듯

저 장난감 갖고 싶어,

저 캐릭터 좋아 라는 말만 해도

그 장난감과 캐릭터에 관련된

온갖 장난감들과 굿즈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집 앞에 끊임없이 택배가 올 정도로

물질쾌락주의의 끝판왕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 남편은 40대 중반을 지나가고 있지만

주식이 햄버거와 라면일 정도로

어렸을 때 이런 정크푸드를 먹지 못했던 것에 대한 결핍이

식습관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게 인간의 심리인걸까.


우리집은 온갖 장난감들과 인형들로 넘쳐났고

물건들로 터질 것 같았다.


또 남편의 취미 또한

건담과 피규어를 모으는 거라

(결핍의 반작용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발 디딜데 없이

모든 방이 남편과 쁘나의 장난감들로 가득가득 찼다.

키덜트의 전형이 우리 남편이었던 것이다.


나는 집이 물건들로 복잡한 것이 싫어

적당히 하라고

화를 낼 때도 있었지만


쁘나가 가지고 싶은 걸 원없이 누리는 것이

썩 나쁘지 않았다.


쁘나 또한 엄마, 아빠가 말만 하면 다 사준다는 것을

빠르게 알아채고

어디를 가든 이거 사줘, 저거 사줘 하며

물건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리의 결핍을 채우려고

쁘나에게 무언가를 사준 거였는데

그 행동이

쁘나의 소비 욕구를 엄청나게 자극하고 만 것이었다.


심지어 절을 구경갔는데

절에 있는 기프트샵에서도 뭘 사달라고 해서

별 희한한 것을 사네 한 적도 있다.


자녀 교육에 대해 조금이라도 신경쓰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아이를 잘 못 키우고 있는 거라고

아이가 가지고 싶다고 말한다고

다 사주면 안된다고

훈계하겠지만


남편과 나는

오히려 어렸을 때 결핍이 생기면

성인이 되었을 때

이상한 부분에 집착하게 되니까

차라리 어렸을 때

아직은 값싸게 해결될 때

다 해줘버리자


만약에 쁘나가 커서

엄마 나는 외제차를 수집하고 싶어, 저거 사줘~~

이러면 난감하니까(?)


차라리 그에 비해 값싼 장난감으로 퉁치는게 낫다 하며

계속 무언가를 사주었다.


하지만 아무거나 사준 것은 아니었다.

남편과 내가 사주는 물건은 디자인적으로 괜찮은 것,

퀄리티적으로 좋은 것만 사주었는데


그 이유는

쁘나가 예술적 기질을 가진 아이라

만약 쁘나가 커서 예술계 쪽의 일을 한다면

쁘나에게는 반드시 자기만의 미적 안목이 필요하므로

무의식중에 쁘나가 접하는 물건들을 통해

미적 안목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쁘나가 4-5살 때부터

쁘나가 입을 옷은

쁘나에게 직접 고르도록 해왔는데

이상한 옷을 고르든

불편한 옷을 고르든

내버려뒀더니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에는

자기에게 편하고

잘 어울리는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또 가방이라던지 악세사리라던지

이런 것들도 직접 고르도록 했는데

유치원 때까지는 너무나도 유치하고

조잡한 물건들을 고르더니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쁘나가 고르는 물건들의 퀄리티가 점점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쁘나는

옷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전체적으로 바로 스캔을 하고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착착 고르는 정도까지 되어

옷 쇼핑이 매우 편해지기까지 했다.


예전에는 1-2시간씩 고민하던 쁘나가

이제는 30분 안에 옷 쇼핑이 끝날 정도로

빨라진 것이다.


자기만의 안목이 드디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쁘나의 물건 욕심은 끝이 난걸까?


어렸을 때

뽀로로, 타요, 티니핑(파산핑이라고 불리는) 등등

수많은 장난감을 가졌던

쁘나는 어느 순간부터

장난감에 대한 관심을 잃어갔다.


남편과 나는

됐다!

장난감 결핍따윈 쁘나에게는 없는거야!!

우리가 해낸거야!!!

하며 자화자찬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착각이었다.

쁘나의 관심사가 달라진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년이 되자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 와서

영화 속 캐릭터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장난감에서 굿즈들로

그 종류만 바뀌었을 뿐

한동안은 캐릭터 굿즈들로 집안이 가득가득 찼다.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자

쁘나는 이제 화장품에 관심이 생겼다.


올리브영에 가서 수많은 립밤 제품을 사주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제품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립 제품에만 관심이 있는 쁘나)

그러다 보니 어떤 제품이 괜찮고

어떤 제품은 좀 별로인지

쁘나에게 화장품 데이터가 쌓였다.


그래서 요새 우리는 그냥 올리브영에 가서

신상 제품들을 구경하고

이 제품은 이게 괜찮네,

얘는 좀 디자인이 별로다

이러면서 1시간씩 우리만의 품평회를 하고

입욕제나 간식거리 하나 정도 사오는 식으로

쇼핑 습관이 변했다.


요새 우리는 마트 안 장난감 코너에 가면

어? 이것도 우리집에 있었던 거다~

이거 있었는데 기억나?? 하며

쁘나와 대화를 나눈다.


쁘나는 기억력이 좋아

대부분의 장난감을 다 기억했고

언제, 어디에서 샀는지도

언제 자기가 그것을 가지고 놀았는지도 기억했다.


5학년이 되자

장난감도 굿즈도

더이상 쁘나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감개무량했다.


최근의 쁘나의 소비습관은 아주 신중해져서

책가방 하나 고르는 것도

인터넷으로 며칠을 검색하고

가격을 비교하면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그 제품이

내가 봐도 꽤 괜찮다.


처음에는 우리의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된 소비가

점점 쁘나의 왕성한 소유욕으로 이어지더니

지금은

이제 이런 장난감들, 화장품들 시시해,

다 가져보니까 별로 의미 없어

해탈의 경지에 오른 쁘나와

탈탈 털린 우리의 텅장만이 남았다.


아 이렇게 소비도 끝이 나는건가.


그런데 갑자기 일주일 전

쁘나가

"엄마, 나 가지고 싶은 거 있어."

"뭔데? 너가 골라봐~"

"이거야." 하며

보여준게

실바니안 장난감이었다.


"엥????? 이거 어린 애들이 가지고 노는 거 아니야???"

"귀엽잖아, 가지고 놀고 싶어."


띠용

쁘나의 장난감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건가???

원래 모든 유행은 다시 되돌아온다더니!!!!!


갑자기 왜 이런 어린애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갖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최근에 본인이 재밌게 보는 유튜버가 있는데

그 유튜버가 이 실바니안 인형들로 소꿉놀이를 하는 영상인데

너무 재밌다는 것이다.


그래서 며칠 전 실바니안 인형 몇 개를 샀다.

쁘나와 나는

그 인형들로 기괴한 소꿉놀이를 했다.


쁘나는 엄마 역할

나는 애기 역할

"엄마, 오븐에 사람이 들어가버렸어~

엄마~~ 이거 안 사주면 나 드러누워버릴거야~~

엄마~ 밥 줘, 나는 바질페스토를 듬뿍 바른 빵 위에

잠봉햄이랑 부라타 치즈가 올라간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

빨리 해줘~~~ 엄마~~~~~~~~~~~~~~"

이러면서

나 혼자 깔깔깔깔거리며 웃자

쁘나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아무래도

유튜브를 보지 못하게 하던지

뭔가 방법을 강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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