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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잃은 엄마를 위로한 날

by 사춘기 엄마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기운을 영 못 차리신다고,

그저 누워만 계신다고,

너희들이 와서 엄마 기운 좀 나게

엄마 좀 보고 가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엄마의 심정이 반은 이해가 되었고

반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우리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썩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가 10년동안이나 외갓집을 가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는

외할머니가 잘 못 한 부분도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크게 지으셨는데

큰 외삼촌은 그 농작물을 실어 대도시에 파는 일을 하셨다.

그래서 큰 외삼촌은 본인집과 할머니집을 왔다갔다 하셨는데


엄마가 호프집을 차리셨을 때

일이 너무 많아

한 날은 김치 담그는 게 너무 힘들어

(가게에서 쓰는 김치도 다 직접 담그셨었다.)

딱 한번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께 전화를 해

돈을 부쳐줄테니

주변에서 김치 좀 사서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고 했다.


외할머니의 김치는 액젓이 너무 많이 들어가

가게 음식으로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큰 외삼촌이 이를 오해해

엄마가 외할머니께 매번 김장을 해서 보내달라 했다고 여겨

엄마께 전화를 해서

너 엄마한테 김치 담가달라고 하지 마라!!!

집에서 김치 얻어다 먹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게 아니고 김치를 사서 보내달라고 한 것이며

돈도 보냈다고 했는데도

큰 외삼촌은 수시로 엄마에게 전화해

시골에서 김치 얻어다 가지 말라고

여러 번 엄마에게 폭언을 하셨다고 했다.


엄마는 외할머니께 전화를 해

큰 오빠가 오해를 하고 있으니

그런 일이 없다고

좀 오해를 풀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외할머니는 그 오해를 풀어주지 않으셨다.


그 일 이후에 엄마는 크게 맘이 상했지만

오해할 수 있다고, 그럴 수 있다고 여기며 넘기려고 했는데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외할머니께서 한 날 전화를 하셔서

주변 지인이 중국을 다녀왔는데 그렇게나 좋았다며

본인도 중국에 가보고 싶다고,

여행 좀 알아봐 달라고

아빠에게 말하신 것이다.


우리 아빠는 뼈속 깊이 효자라 당연히

장모님 저희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해서

외할머니, 외할버지, 친할머니, 막내 외삼촌의 장모님까지

총 4분의 어르신을 모시고 중국 여행을 다녀오셨다.


현지 특산품이 라텍스 장판이었는데

외할머니께서 장판을 만지작 거리며 참 좋네 하셔서

효자인 우리 아빠는

150만원에 달하는 라텍스 장판을 할머니께 선물하셨다.


여행은 매우 좋았다고 했다.

어르신들 모두 만족하셨다고.


그런데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사단이 났다고 했다.


갑자기 셋째 외삼촌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왜 어르신들 데리고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으면

그에 필요한 경비든 용돈이든 모든 걸 다 책임져야지

왜 우리한테 돈을 내라고 하냐면서

아빠께 폭언을 퍼부은 것이다.


아빠는 무슨 소리냐

이미 외할머니는 여행경비를 내게 보냈고

그 외 필요한 경비는 다 내가 냈다,

할머니께 돈 달라고 한 적 없다고 하자


여행 전에

외할머니가 아들들에게 전화를 해서

각 집마다 20만원씩 모아서

돈을 보내라고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패키지 여행 경비는 일인당 100만원이었는데

외할머니께서는 여행 전 아빠에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경비인 200만원을

아빠께 미리 보냈는데

그 돈 중 80만원은 아들들이 모아서 보내준 돈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아빠, 엄마는 전혀 모르셨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그렇지 않아도

속이 꼬여 있었는데

여행을 다녀오셔서 기분이 좋으셨던

외할머니가

아들들에게 전화를 걸어

니네 매형이 여행비도 다 대주고

(이건 사실 외할머니가 과장한 말)

좋은 선물도 사주더라고

자랑을 하신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효도를 하지 않는

아들들을 탓하기 위함도 있었으리라.)


그러자 배속이 뒤틀린

셋째 외삼촌은

본인의 꼬인 심사를

아빠를 비난하는 것으로 화풀이를 하셨다.


셋째 외삼촌이 그토록 화를 내신 이유 중에 하나는

그저 자기 수중에서 20만원 나가는 것이 아까워서.

(그는 중견기업을 이끄는 사장이다.)


그리고 장인, 장모께 효도하는 사위가 꼴뵈기 싫어서일 수도


아빠는 억울해하셨다.


할머니께서 200만원을 보내셨어도

여행을 준비하는 데 쓰인 돈과

예상치 못하게 여행을 가게 되면서

엄마, 아빠, 할머니 여행 경비,

외할머니 선물로 드린 라텍스 등

(라텍스는 2개를 사셨다고 했다, 외할머니꺼, 엄마꺼)

무척이나 많은 돈을 쓰신 것도 쓰신 거지만


어르신들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그 모든 고생과 지출에 대한 결과가

비난과 폭언이었으므로


아빠는 외갓집을 찾아가

외할머니와 외할버지께 셋째 외삼촌이 이상한 비난을 한다며

중간에서 좀 조정을 해주시라고 부탁했지만

두 분은 그 상황을 방관하셨다.


아니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이야기해도

외삼촌은 그냥 분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겠지.


아빠와 엄마는 맘이 크게 상해

그 날로 외갓집으로의 발길을 끊었다.


아빠는 많이 속상해 하셨다.

뼈속 깊이 효자인 아빠는

본인의 아버지(내게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후회하지 않도록

할머니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셨고

외갓집을 자주 찾아갔고

(가게를 매일 열면서도 잠을 줄이고

할머니집과 외갓집을 그렇게 찾으셨다.)

가서 어르신들께 용돈도 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항상 사가는 사위였는데


그 모든 노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아빠는 인정 욕구도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효도하고 싶은데 효도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마음 아파 하셨다.


장인어른, 장모님께 무언가를 해드리면

아들들이 그것을 아니꼽게 보았으니까.


더 나아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유산을 노리고

저렇게 잘 하는 거라며

아빠와 엄마를 의심했다.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다시 관계가 좋아질 즈음에

외할버지가 돌아가셨다.


외할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빠는 셋째 외삼촌께

예전의 오해를 풀자고,

형제끼리 잘 지내야 한다고

(아빠가 셋째 외삼촌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이야기 좀 하자고 했더니

셋째 외삼촌은

장례식장 탁자를 발로 차고 나가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외갓집 식구들과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는데


더 최악의 사건은 사실 따로 있었다.


바로 건강한 외할머니를 아들들이 합세하여

요양병원에 모셔버린 것이었다.


할머니는 치매가 없었는데

치매가 있는 것 같다며

할머니를 치매 환자로 만들어

셋째 외삼촌 주도로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오로지 하나,

돈 때문이었다.


할머니께 이제 병원 생활을 하셔야 하니

가지고 있는 모든 돈 다 우리한테 내 놓으시오

하고 할머니 돈을 갈취해 간 후

할머니는 병원에 방치하고

그 돈을 아들들끼리 나눠 가져버렸다.


엄마가 그 사실을 알고

극대노 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내가 할머니를 모시겠다고 말하자


외삼촌들은

엄마에게

너는 출가외인이니

집안일에 신경쓰지 말라 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마음이 무너졌다.


실제로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실 즈음에

엄마, 아빠는 시골에 주택을 짓기 시작했는데

유일하게 살아계신 부모인 외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집을 2채나 지었다.


마당 가운데에 본집, 왼쪽에 작은집


엄마는 큰 외삼촌을 찾아가고

셋째 외삼촌을 찾아가

할머니가 계실 집까지 지었으니

내게 보내달라고 했는데

외삼촌들은

너가 지금 유산을 노리고 이러는 게 아니냐

하며

엄마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셨다.


할머니는 3년을 병원에 갇혀서

미라처럼 말라서 돌아가셨다.


엄마는 수시로 할머니 병원을 찾아가

직접 만드신 영양 가득한 음식을 먹이시고

바람을 쐬게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나 좀 꺼내주라, 나 좀 여기서 나가게 해주라

여기는 지옥이다 하셨다는 것이다.


엄마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버렸다.


차라리 할머니가 진짜로 치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이 모든 상황을 온전한 정신으로 겪기에는

너무나도 괴로운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3일 전까지도

멀쩡한 정신이셨고

엄마를 보면 그저 눈물만 흘리셨다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장례식장에서 뵌 외삼촌들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있길래

왜 저런 얼굴들이지? 했더니

부조금이 들어오니 기뻐서 저러는 거라고

엄마는 감정도 없이 말하셨다.


막내 외삼촌은 호상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하셨다.

그리고 3일 내내 장례식을 지켰던 아빠에게

셋째 외삼촌은

부조금은 우리가 알아서 계산할테니 관심 끄쇼! 라며

끝까지 아빠를 의심하고 배척했다.


엄마가 들려주는(지금까지는 몰랐던) 외삼촌들의 망언과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외삼촌들이 더욱 미워졌다.


그래서 나는

외삼촌들은 사람도 아니야, 돈에 미친 인간들이야 정말,

외할머니도 좋은 사람은 아니였어!!

나는 엄마를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외삼촌들 욕만 실컷 해버렸다.


외삼촌들을 향한 푸짐한 욕과 할머니를 비난하는 내 말에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셨다.


엄마는 끝까지 최선을 다 했다고,

외할머니가 그토록 엄마에게 못 되게 행동했지만

엄마는 끝까지 할머니를 놓지 않았으니

이제 된 거라고,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내 나름의 위로를 했다.


공부도 안 시켜주고

식모처럼 부려먹은 딸인데

엄마는 그 마음 속에 원망도 없는걸까.


또 이렇게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아들들에게

어떠한 벌도 내리지 않는걸까?


큰 외삼촌은 최근 당뇨가 심해

왼쪽 다리 무릎 아래까지를 절단하는 수술을 하셨다.

그 수술하는 날이 외할머니 돌아가시기 전날이었다.


큰 외삼촌에게 처음에는 외할머니 부고를 알리지 않았는데

장례식장에서 보낸 부고 문자때문에

큰 외삼촌은 할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할머니 장례식장을 가기 전

큰 외삼촌 병원을 잠깐 들렸는데

본인이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큰 고통을 겪게 되는 거냐며

한탄하는 외삼촌 말을 듣고만 있었다고 했다.


무슨 죄를 지으셨기는!!!


수많은 죄를 지으셨는데

본인만 모르는 것이다.


큰 외삼촌의 자식들 셋도

편하게 살지 못하고 있다.


나는 궁금해졌다.

큰 외삼촌은 벌을 받고 계시고

과연 둘째, 셋째, 막내 외삼촌에게는 어떤 벌이 내려질까.


그런데 이 말을 하자

아빠가 불경하다고,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고

나를 단속했다.


벌이 내려지라고 내가 기도한다는 게 아니라

인과응보에 따라 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거지

큰 외삼촌처럼!!


아빠는 그런 마음은 아주 나쁜 거라고 했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또 이해 못 할 일도 없다고 하셨다.


70세인 우리 아빠는 그런 수모와 어려움을 당했음에도

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또 나름의 입장이 있어

그렇게 한 것일테니 나쁘게 생각말고

베풀면서 사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항상 그런 태도를 취하는 아빠가

좋고 존경스럽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항상 착하게 살고

베풀면서 살아야 된다고 다시 한번 말씀하셨다.


나 또한 아빠의 이런 가르침을 어렸을 때부터

받고 자랐기 때문에

착하게 살려고 노력은 한다.


또 그에 더해

인과응보 또한 믿는다.


내가 지은 죄로 인해

내 인생도 망치지만

쁘나의 인생까지도 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외삼촌들은 좀 벌받아야되!

라고 생각하는 나


아빠, 엄마는 나를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나는 좀 나쁘게 커버렸다.


아빠의 가르침을 다시 되새기면서


모두들 그저 잘 살기를,

할머니는 좋은 곳 가시기를,

엄마는 기운 차리시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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