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선택하는 것!!
나와 남편은 쁘나가 5살 때 이혼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서로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와
쁘나 앞에서까지 싸우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싸움을 할 줄 몰랐던 남편은 몇 달이고 묵언시위로 나에게 항의했고
나는 나대로 소리를 질러가며 남편을 몰아세웠다.
남편은 이렇게 살 수 없을 것 같다면서
나에게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사인을 하고 함께 가정법원에 이혼 서류를 내고 온 며칠 후
쁘나의 어린이집 연말 학예 발표회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무대 위 쁘나의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보면서
혼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학교에서 이혼 가정의 아이들을 보면서
몇몇 아이들은 그 아픔을 상당히 견디기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도 쁘나에게 그 아픔을 주는 엄마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안 되겠다, 이건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생각을 다 뜯어서
바꿔버리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남편의 모습은
첫째로, 나와 통장을 합치지 않고
자신이 번 돈은 자유롭게 쓰고 싶다며
(거기까진 이해했다.)
빚까지 내면서(여기는 이해가 안됐다.)
건담이나 피규어들을 모으는
남편의 몰상식한(?) 경제 생활 습관이었다.
나는 돈에 관해서는 굉장히 계획적인 사람이어서
결혼 전에도
적금과 펀드를 항상 들어서
돈을 차곡차곡 모으는 스타일이었는데
결혼 후에는
통장을 합쳐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자산을 굴릴까
핑크빛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빚을 내어
(우리는 양가 부모님이 집을 사주셔서
빚이 없었다.)
자신만의 취미생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남편에 대한 불만사항 두번째는
바로 남편이 심각한 게임러버
(게임중독자라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평일에는 쁘나와 나의 저녁을 챙겨준 후
쁘나 목욕을 시켜줬다.
그러고나면 7시.
그때부터 남편은 컴퓨터방에 들어가
게임을 하기 시작했는데
평일에도 새벽 1-2시까지 하는 게 기본이었다.
그러다보니 주말에는 외출을 하지 않고
항상 집에 있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피곤하다는 것이었고
(당연히 매일 새벽 1-2시까지 게임을 하면 피곤하겠지!!!)
원래도 바깥 외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주말에는 하루 종일 게임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쁘나를 아예 안 본 것은 아니었다.
주말에는 쁘나와 나의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줬고
특히 쁘나는 잠투정이 매우 심해
쁘나가 3살이 될 때까지
남편은 쁘나를 안고 밤마다 1시간씩 바깥을 걷고 들어와서
쁘나를 재워주었다.
그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동안
나는 쁘나와 단둘이 시간을 보냈는데
같은 집에 살지만
나와 남편은 분리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말에는 외출도 하고 싶고
바깥 공기도 쐬고 싶은데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밖에 나가 푸는 스타일이었다.)
결혼 후 5년 동안 우리가 여행간 곳은
5곳도 되지 않았다.
(사진첩을 보니 그렇다.)
누군가는 남편이 밥도 차려줘,
애기 씻겨주기까지 해,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고 하겠지만
컴퓨터방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얼굴 보기 어려운 남편과 사는 게
그때는 괴로웠다.
너무 답답할 때는
쁘나를 데리고 홀로 친정에 놀러가기도,
언니네에 가서 자고 오기도 했지만
그 생활이 5년을 넘어가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5년동안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내가 연수를 다녀온다면
흔쾌히 보내주는 사람이었어서
나는 무언가를 배운다는 즐거움 플러스
바깥에 나갈 수 있다는 행복감으로
연수를 쫓아다녔다.
먼 곳 까지 연수를 다녀서 집을 비우는
1박 2일 연수, 2박 3일 연수도 다녔는데
남편은 그런 부분에서는 전혀 터치하지 않았다.
남편의 기본적인 가치관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자여서
내가 무언가 하고 싶다면 하면 하라고 했다.
그대신 똑같이 본인도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살고 싶으니
내가 그것을 막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안 된다고 했다.
존중이라는 단어
너무 좋은 단어지만
내게 남편은 멀리 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싸울 때
당신은 너무 개인주의적이야!!! 하며
비난한 적도 있다.
그런데 연수를 다니다 보니
내 시야는 점점 더 넓어졌고
세상은 넓고 할일은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강해지자
집에만 있는 남편이 너무나도 답답한 사람처럼 보였다.
항상 똑같다는 건,
고여있다는 것과 같다.
변화가 없는 사람
남편이 한결같은 사람이라 좋아했지만
또 그 점이 나를 답답하게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쁘나가 있었다.
나는 이미 쁘나를 낳아버렸고
쁘나는 내 인생 최대의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
나는 내 생각을 선택하기로 했다.
일단 첫번째, 각자 통장관리를 하는 것 때문에
돈을 모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꾸자,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면
나도 내가 번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잖아!!
이건 자유인 것이야!!!
부부라고 꼭 통장을 합쳐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건 너의 고정관념일 수 있어,
생각을 바꾸자!
두번째, 집에만 있는 남편이 싫어?
그러면 너만 나가! 쁘나만 데리고 나가던가!!
집에 있으니까 뭐 술을 먹고 사고를 칠 일이 있어,
(남편은 술을 전혀 못한다.)
여자 문제가 생길 일이 있어,
(남편은 핸드폰도 잘 보지 않는다.)
도박을 해서 빚을 질 일이 있어,
게임만 하는 남편
오히려 좋아!!!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그 전에는 답답해보였던 남편이
훨씬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사람인데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렇게 쉽게 상황이 바뀐다.
어처구니없게도.
상담 공부를 하다보니
그 당시 내가 한 생각을
이론으로 정리해놓은 사람이 있었는데
현실 치료를 창시한 윌리엄 글래서라는 인물이다.
현실 치료의 기본 철학은 선택 이론인데
그 내용인즉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은 자신뿐이며,
모든 것이 자신에 의해 선택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마저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궁극적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하고 싶었다.
내 속을 깊이 들여다보니
나는 행복하고 싶다,
나는 웃고 싶다,
나는 즐겁게 살고 싶다,
이 마음이 내가 가장 원하는 거였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면 되지!!!
왜 안 돼??!!!!!
좋아, 그렇다면 나는 내 행복을 선택했으니
행복하지 않은 생각은 싹 없애버릴거야,
나는 행복을 선택했으니까
그러자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언성 높여 싸워도
내 밥은 꼭 한쪽에 챙겨줬던 남편,
게임하다가도 쁘나가 잠투정을 시작하면
발이 꽁꽁 얼 것 같은 겨울날에도
아기띠를 하고
쁘나를 안고 나가던 남편이
고맙지 않다면
내가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 남편아 고맙다!!
감사하구나!!!!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남편이 고마워졌다.
행복한 삶은 결국 감사하는 삶이구나!!!!
나는 속으로 감사하다고 소리쳤다.
속으로만 이야기하다가
점차 말로도 나왔다.
여보 고마워.
애썼어.
우리는 그렇게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요즘 나는 잠자기 전,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면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며 일어난다.
(사실 나는 무교다. 그냥 목적어가 필요해서 하느님이라고 말한다.)
행복합니다 정말로
우리 가족 건강을 지켜주시고
제게 행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완전 기독교인 아냐?? 싶지만 아니다.)
모두들 행복을 선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