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에발
교사로 일할 때 교사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여자애가 가르치기 쉽냐, 남자애가 가르치기 쉽냐.
어떤 선생님들은
여자애들은 다루기 힘들어,
남자애들은 단순하잖아~, 또는
여자애들은 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
남자애들은 따돌리거나 그런 건 잘 안 하잖아~, 라며
남자애들이 더 다루기 쉽다고 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남자애들이 다루기 쉽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남자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보통 여자애들보다는
구구절절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신경써서 소통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반 남자아이 두 명이 복도에서 시끄럽게 장난을 치다가
무서우신 학년부장선생님께서 그 광경을 목격하시고 아이들을 불렀다.
"너희들 이리와!!!!!"하자
한 명은 무섭지만 부장선생님께 갔고,
다른 한 명은 잽싸게(?) 우리 반으로 도망쳐왔다.
복도에서 큰 소리가 들려 나가보자
부장선생님께서는 굉장히 화가 나셔서
방금 도망쳐 들어온 아이를 당장 내보내라고
선생님이 불렀는데 도망쳐 버리는 것은 어느 예절이라며,
치졸하고 비겁하다면서
아이를 맹비난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감정적으로 격해진 부장선생님을 달래며(?)
"부장님, 저희반 아이니 제가 불러서 따끔하게 혼내겠습니다,
부장님 진정하시고 돌아가시면 어떨까요?"
부장님은 씩씩거리시다가 내가 아이를 내보내주지 않자
그냥 돌아가셨다.
돌아서서 그 아이를 보자
얼굴이 사색이 되어 나를 보고 있었다.
바로 든 생각
'무서웠구나.'
50대 남자 선생님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너 이리와!!!" 하자
아이는 겁이 나서 도망친 것으로 보였다.
그 아이에게 말했다.
"00야, 00반 선생님이 불렀는데 왜 도망쳤어?"
아이는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어떤 남자아이들은 자신이 잘 못 했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때는 00반 선생님이 엄청 무서워서 도망친 것 같은데 맞아?"
아이의 표정과 태도를 보면서
내가 생각한게 맞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아이는 대답도 못 하고, 끄덕끄덕 고개짓으로만 답을 했다.
"무서웠구나,
근데 나같아도 어른이 막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오라고 하면
엄청 무서웠을 것 같아."
그러자 아이 얼굴이 좀 풀리는 게 보였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너가 도망친 것을 비겁하다고 표현하셨는데
지금 선생님이 너무 화가 나서 좀 심하게 말하신 것 같아.
내가 지금까지 봐온 너는 비겁한 사람은 아니야,
그냥 지금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너도 모르게 도망친 것 같은데 맞아?"
하자 아이는 끄덕끄덕 했다.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너무 놀랐을 때는 눈물도 나오지 않다가
조금 진정이 되자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람은 너무 무서우면 도망가고 싶기도 해,
방금 엄청 무섭고 당황스러웠지?"
그러자 아이는 그렇다고 조그맣게 대답했다.
"그래, 그랬겠어.
그런데 그 선생님이 왜 너희들을 부른거지?"
아까 같이 장난치다가 부장선생님께 혼난 다른 아이가 와서
복도에서 떠들어서 혼난 거라고 말했다.
"그래, 복도에서 너희들 좀 심하게 장난쳤구나, 그치?
00반 선생님이 복도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거 엄청 싫어하는 거 너희들도 알고 있지?"
그러자 평소 부장선생님의 엄격함을 알고 있었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자, 그러면 어떡할까나,
00야, 조금 진정됬어?
00반 선생님도 지금 조금 진정되셨을 것 같아,
어떻게 하는게 좋으려나?"
아이는 그 선생님께 가서 도망쳐서 죄송하다고 말하겠다고 했다.
"그래, 그럼 나도 같이 가자, 너희들은 나한테 엄청 혼났다고 나는 이야기한다~,
00는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입이 안 떨어질 것 같으면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줄게~, 걱정마." 하고
우리는 다같이 부장선생님 반으로 가서
이야기드렸다.
사건은 잘 해결되었다.
남자아이들은 거칠게 다뤄도 된다고?
남자아이들이 단순하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아이들도 여자아이들과 같이 매우 섬세하고 예민하다.
그런데 여자아이들보다는 그것을 말로 잘 표현하지 않을 뿐.
남자아이들이 말로 잘 표현하지 않으니
선생님도, 부모님도 답답한 나머지
아이들에게 윽박을 지르고
협박을 하는데
사실 말로 표현하는 걸 배우지 못한 것도 있다.
우리 나라 정서 상
남자가 구구절절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건 뭔가 남성스럽지 않다는
왜곡된 문화가 남자들 사이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 어른들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자라지 못 했기 때문에
편안하게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 하는 것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뭐 여자 어른들이라고 얼마나 자신의 감정을 건강하게 잘 표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로 조리있게 말하는 것을 잘 모른다면
왜 말로 못 하냐고, 혼낼 게 아니라
모르는 건 가르쳐주고,
꾸준히 연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다려주면 된다.
그게 선생님들이, 어른들이, 부모님들이 해야할 일 아닌가.
최근 이런 저런 일로 아이들과 관련한 일로 통화할 일이 많아
생각이 많아져서 글로 남겨본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걸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걸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