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히 사과합니다.

미안하지 않을 때도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by 사춘기 엄마

어제 쁘나와 놀다가

갑자기 쁘나가 내 행동 중 어떤 부분에 기분이 상했는지

"엄마, 나한테 사과해."라고 말했다.


무엇 때문에 기분이 상했는지

눈치를 못 챈 나는

"쁘나 왜 기분 상했어?" 하자

쁘나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고 그저

"엄마 얼른 나한테 사과해."라고 했다.


예전의 나라면

그 이유가 명확해야 사과를 하지, 또는

웬지 사과의 말을 하는 그 행동 자체가 어색하고 머쓱해서

"나 사과 안 할거야!!"하고 더 청개구리처럼 행동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쁘나는 자신이 기분 나쁜 이유를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보였고,

그런 경우 시간이 지나면 본인이 왜 기분이 상했는지

후에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그냥 쁘나에게 말했다.


"쁘나야, 미안해."


그리고나서 다른 일을 하고 돌아와서 다시 놀았는데

조금 있다가 또 쁘나가

"엄마, 사과 제대로 안 했잖아, 빨리 사과해." 라고 하지 않는가?


"엥? 나 아까 미안하다고 했는데?!!!"

그러자 쁘나는

"다시 사과해."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다른 엄청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사과의 말을 듣고 싶은 거라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싶어서


"쁘나씨, 미안합니다. 정중하게 사과합니다. 미안해요." 하자

쁘나는 그제서야

"응, 알겠어." 한다.


도대체 뭐에 기분이 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이 기분이 풀린 게 보여서 넘어갔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변화된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이상한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나 사과하기 싫어!!!

내가 왜 사과해야 해??!?!!" 하며

으름장을 놓고,

잔뜩 가시를 세우며

예민하게 반응했었는데


이제는 뭐,

나한테 사과 받고 싶다고?

그래~ 미안하다고 하지 뭐~

쁘나씨 미안합니다,

남편씨 미안합니다, 한다.


실제로 미안한 마음이 있을 때도 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때

미안하다고 말해도

내 자존심에 상처가 나지 않는다.


건강하지 못한 자존감에서 나온

옹졸한 자존심 하나 지키려고

날을 세우고

부득불 상대방을 이기고자 했던 예전의 나에서

유하게 변화된 나를 알아채고는

나도 조금 놀랬다.


오~~ 나 조금 유해졌구나~~

좀 괜찮아졌네~~


내가 나를 칭찬하면서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근데 쁘나는 뭐에 기분이 상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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