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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ludens Mar 29. 2024

봄마중

창밖으로 하얀 꽃길이 흐른다. 봄꽃을 구경 나온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한낮의 후끈한 공기와 뒤섞여 듣기 좋은 울림이 된다. 작은 천을 따라 심어놓은 벚꽃은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나 사람들의 마음에 바람을 넣는다.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에 스멀스멀 바람이 들어오면 오색 풍선이 부풀어 올라 가슴 안에서 커지는 기분이다.

      

  ‘붕’ 뜨는 마음을 잡아타고 어느새 나는 고향 마을로 날아간다. 온 산은 진달래다. 식물원에 박제된 나약한 진달래가 아니라 험한 산 곳곳에서 새벽의 추위와 모진 바람을 이겨낸 단단한 진달래다.

  어른들은 봄이면 진달래 꺾으러 산으로 내달리는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곤 하셨다. 

  “산에 문둥이 살어. 진달래에 홀려서 정신 못 차리는 애들을 잡아다가 간을 내어 먹으면 문둥병이 낫거든. 산에 가지 말아라.” 

  지금은 한센병으로 알고 있지만 그때는 ‘문둥병’이라 낮춰 말하며 멸시와 금기의 대상으로 규정지어 차별하던 무지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 안에서 언제나 승리하는 건 공포가 아니라 빛나는 봄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산으로 갔다.       


  온 산 진달래에 취해 내처 달려 마을 어귀에 도착한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다리를 하나 건너야 한다. 다리 아래 맑고 강한 물줄기가 흐른다. 너무나 반가워 눈물이 날 정도다. 지금은 어둡고 지저분한 바닥을 빈약한 물줄기가 겨우겨우 흐르느라 애를 쓰는데 나 어릴 적엔 달랐다. 

  시원하게 흐르는 시냇가로 둥근 돌이 서너 개 놓여있다. ‘팡팡’ 울리는 방망이 소리는 먼 산으로 가 부딪히고 다시 돌아온다. 

  ‘우리 엄마!’ 그곳에 우리 엄마가 계신다. 일곱 식구 벗어놓은 빨랫감이 그득하다. 잰 손으로 빨랫돌에 옷을 비벼 흐르는 물에 휘휘 젖는 엄마의 팔에서 힘이 느껴진다. 그 옆으로 버들강아지를 꺾어서 엄마 뒷목을 간질이다 혼구녕이 나는 나와 동생도 정겹다. 곧 저 좋은 물로 뛰어들어 첨벙거릴 기대에 부풀어 오늘도 마냥 기분 좋은 철없는 나와 친구들이 너무도 예쁘다.     


  유년의 기억은 나에게 힘이 된다. 그 시절이 풍요롭고 행복해서가 아니다. 어려운 시절, 든든하게 나를 지켜주시던 부모님과 함께 성장했던 친구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고향마을로 떠난 유년의 봄마중은 지쳐 넘어진 하루에 포근한 다독임이 된다. 힘을 받았으니 봄을 시작으로 여름, 가을, 겨울 신나게 살아보자. 역시 봄은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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