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실없는 소리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소소한 얘기가 아니라 실없는 얘기
“사람 참 싱겁구먼”의 그 싱거운 사람이 나여서 상대방을 피식피식 웃게 하고 싶다.
특히 무표정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 끝내 경직된 근육이 슬쩍 풀어질 때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이 너무 귀엽게 그리고 그 표정이 귀하게 느껴진다.
당신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라는 생각으로 아무 말이나 툭툭 아니 나름 고심해서 던져보지만 먹혀들지 않으면 속으로 ‘에이 실패했다 ‘라고 생각하지만 승부욕이 불타오른다. 나는 그렇게 재미난 사람은 아니다. 내가 말 만해도 그런 이들이 빵빵 터질 일은 없다. 그래도 가끔 냉소적인 내 나름의 언어적 유희가 통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런 이들은 나의 혼잣말 같은 자조에 잘도 헤픈 웃음을 보여준다. 이런 사람을 만나서 속으로 ’ 빙고‘를 외친다.
내가 하는 말에 그렇게 자꾸 웃어주는 사람과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평소에는 말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지만 말이다. 나처럼 낯가리고 말 없는 사람이지만 뭔가 그 사람의 속내가 궁금해지는 사람, 또는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내가 던진 농담에 웃어주는 사람과의 대화는 즐겁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는 장난을 당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장난을 치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겠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의 어쩔 줄 몰라 당혹스러워하는 얼굴을 꽤나 좋아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우면 괴롭혀주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나에겐 있었다.
아버지와 호두(같이 살았던 강아지)가 있었을 때 혼자서 떠드는 건 항상 나였다.
그들은 내가 뭐라고 말하든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했다. 아버지는 안방에서 ’ 나는 가수다 ‘를 보고 호두는 가만히 앉아서 개껌을 뜯었다. 나는 아버지와 호두 사이를 돌아디니면서 괜히 호두를 백번씩 부르고 아버지에게 쓸데없는 소리들을 했다.
호두는 아주 도도한 강아지라서 내가 스무 번쯤 부르면 그제야 나를 돌아보거나 아주 느린 걸음으로 내 곁으로 와줬는데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처음에 부를 때도 귀가 쫑긋하는 걸 보면 분명 내 말을 듣고 있는데 무시하는 그 맹랑함이 사랑스러웠다.
“아빠 있잖아 내가 티브이에서 봤는데 블라블라”
아빠한테는 내가 티브이에서 보고 책에서 보고 인터넷에서 보고 살면서 본 온갖 얘기들을 다 했다.
그 일상의 싱거운 순간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내 어린 시절 가장 즐거웠던 한 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의미가 없는 얘기를 아무렇게나 할 수 있었던 둘은 지금은 세상에 없다.
하지만 가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을 때 아빠, 호두야 하고 속으로 읊조려 본다. 싱거운 얘기를 하고 싶어서 부른 거였는데 아직은 눈물부터 맺힌다.
그들의 싱거운 반응이 나를 너무나 편안하고 나답게 해 줬는데
문득 추억에 잠겨 웃다가 싱거운 농담이 하고 싶어졌다. 너무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