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주기로 뿌리 염색을 하러 미용실에 간다. 이번에 한 달을 좀 넘겼더니 흰머리가 제법 많이 올라와서 거울을 보는데 당장이라도 미용실 예약을 하고 싶어 진다. 뿌리 염색이 귀찮아서 흰머리를 그대로 둘까도 생각해봤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다. 그런데 일 마치고 바로 미용실에 가려고 예약을 하려고 미용실 담당 선생님 카톡 대화창을 찾다 보니 한 가지가 맘에 걸린다. 오늘은 원래 마치고 바로 운동을 갈려고 운동복까지 챙기느라 짐 가방이 두 개나 되었다.
평소에도 보부상이라 짐이 많은 편이지만 오늘따라 짐이 더 주렁주렁 한가득이다. 어쩐지 이 상태로 미용실에 가기가 꺼려진다. 미용실에 갈 때마다 든 나의 에코백 그리고 도시락 가방. 사실 미용실에 갈 때마다 든 것이 아니라 거의 일주일에 5일은 들고 다니는 나의 데일리 백이다. 나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가방을 메고 다닌다. 이제는 너무 오래 든 탓에 어깨 부분 올이 풀려서 실밥이 삐죽 삐져나와있다 요즘 들어서 나는 몇 년을 나와 동고동락 해온 그 가방이 자꾸 부끄러워진다. 한 번도 남들의 명품 가방을 부러워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탓에 고객들의 명품 가방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보고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시즌 별로 패션쇼도 찾아보지만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니고 특히 명품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명품 가방을 살 정도의 재력이 된다면 살 수도 있겠지만 나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그 가방을 살 정도로 마음이 동한 적은 없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나이가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가방이나 지갑을 꺼내서 보여줄 일이 생길 때 나의 낡은 가방과 지갑이 어쩐지 맘에 걸리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번 미용실에 가서 뿌리 염색을 할 만큼 보이는 부분에 신경을 쓰지만 그럴듯한 가방 하나 제대로 살 여유가 없는 사정이라는 것을 여실히 들키는 기분이었다. 낡은 천가방과 브랜드 없는 카드 지갑은 나의 주머니 사정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처럼 느껴졌다.
한 달에 한번 미용실에 가서 뿌리 염색은 해야 할 만큼 겉으로 보이는 외양에 신경을 쓰고 돈을 투자하면서 그럴듯한 가방 하나 없는 것이 내가 무리를 해서 빠듯하게 나 자신에게 돈을 쓰고 있는 증거로 보일 것이 자명해 스스로 자격지심에 민망한 걸까
아니면 나이가 30대 후반이 되었는데도 명품 가방 하나를 살 정도의 연봉을 받지 못하는 나의 능력이 부끄러운 걸까
명품 지갑과 명품 가방이 없음을 가난하다로 바로 연결 지을 수는 없겠지만 어린 나이에도 오래 쓰는 지갑과 가방만이라도 좋은 걸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요즘 시대에 나는 어느새 그런 물건이 하나도 없는 내가 어떤 부분에서는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일관되게 검소하면서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무리하는 부분은 무리를 해서라도 돈을 투자하고 신경을 쓰면서도 사실은 여유롭지 않은 내 사정을 타인에게 들키기 싫은 마음은 모순적이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물질적인 것이 다가 아니다 시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가방이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 비치고 해석될지에서 끝내 자유롭지 못한 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올해 들어 저렴하고 금방 버리는 물건 대신에 자주 착용하는 주얼리나 가방 지갑만이라도 그럴듯한 것을 마련해 보는 게 어떨까. 내가 아니라 엄마라도 그런 가방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한번 사두면 거의 평생을 쓰는데 라는 마음을 가지고 그런 물건을 파는 샵과 온라인 사이트를 기웃거리는 나를 볼 때마다 이것이 나의 진짜 욕망인지 지금 우리 사회의 욕망을 내가 충실히 따르려고 하는 것일 뿐인지 헷갈린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