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구석 반항아였다. 제대로 타락할 자신은 없었지만 지켜야 할 규율들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속에 화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날라리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담배를 피고, 연애를 하고,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반항한다고 온갖 책을 봤다. 엄마는 내가 읽는 책들을 불온하다고 여기셨으니 그것은 반항이 맞다. 그리고 펑크락 프로그래시브락 음악과 힙합을 듣고, 낯선 도시를 걸었다. 세상은 싫었지만 본능적으로 어떤 틀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나도 싫었다. 그리고 그런 무리를 지어 다니는 괄괄한 아이들과도 나는 어쩐지 닮은 점이 없게 느껴졌다. 그냥 혼자서 책 속을 유영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내가 있고 싶은 어떤 세계 안에 머무는 게 더 좋았다. 따지고 보면 혼자서도 충분히 담배를 펴 보거나 술을 마셔볼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나는 그러지 않았을까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정말로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었던 걸까
그렇게 만들어진 규칙을 싫어하고 학교란 곳을 지긋지긋하게 여겼으면서 말이다.
결국 학교는 싫었지만 학교 밖에서도 내가 속할 곳은 없다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그런 게임 있지 않은가 빙글빙글 여러 사람이 음악에 맞춰서 돌다가 두명이라고 누군가 외치면 두명이 끌어안으면 되고 다섯명을 외치면 다섯명이 서로 얼싸안아서 매칭이 된 사람들만 다음 단계로 통과하는 게임 그 게임에서 사람들은 두명이라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끌어안는데 나는 우물쭈물하면서 눈치만 보다가 결국 혼자남는 아이 그것이 나 같았고 그 혼자인 내가 많이 외롭고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나와 결이 맞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었기에 억지로 누군가와 친해지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담배를 한 번도 입에 물어본 적이 없다. 예술가를 꿈꾸며 영화에서 작가나 화가가 입에 삐딱하게 담배를 물고 작업을 하는 멋진 장면을 볼 때조차 한번 나도 해볼까 라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술은 호기심에 몇 번 마셔봤지만 유전과 체질상의 문제로 맥주 반 캔 소주 한 잔 정도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속부터 더부룩해지는 통에 그 알딸딸한 기분 좋은 상태까지 도달하기 전에 몸이 불편해져서 결국 안 마시는게 낫다는 결론을 내린 후에는 거의 입에 댄 적이 없었다. 몇 년간 와인을 판매하면서 내가 판매하는 제품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시음을 명목으로 주량을 올려보려고 노력했고 와인의 풍미 정도는 알게 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술은 나에게 일정 이상의 음용을 끝내 허용하지 않았다.
술과 담배는 못하지만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나는 음주 없이 클럽에서 춤을 추고 공연장을 쫓아다니는 것으로 가무의 욕구를 풀곤 했다.
술을 좋아하지 않아도 술자리는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난 사실 술 취한 사람들의 모습이 불편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많은 친분과 애정의 결실은 술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자명한데 나는 술로 인해 사람들이 눈동자가 풀어지고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시시껄렁한 말들을 핑퐁처럼 주고받거나 혹은 어린이도 아닌 유아같은 애교를 떨고 흐트러지는 모습을 맨정신으로 받아주기가 힘들었다. 그 정도의 아량이나 여유가 없었고 그 자리에 있는 시간이 시간 낭비 같았다. 밤길을 걸을 때 불야성을 이루는 포차에서 느껴지는 흥분과 열기에 위화감을 느끼며 황급히 그 골목길을 빠져나올 때마다 나는 내가 이상한가 하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이성적인 사람도 친한 사람과 있을 때는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던데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도 사실 풀어진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극적인 반전 매력 같은 건 나에게 없는 것 같다. 나에게 똘끼가 없다. 그러나 사회의 모범 시민이 될 수도 없다. 그것이 나를 시무룩하게 했다. 내 안의 야망을 바깥으로 표출할 길이 없다는 절망감, 성격과 취향의 간극과 괴리에서 오는 이질감, 이방인의 감각은 평생을 나를 따라다닌 것 같다. 요즘 세상에선 그냥 이런 것도 소심한 관종이라는 한 문장으로 정의되는 듯 싶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캐릭터 없음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틈새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볼수록 한마디로 나는 낄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딘가에 내 깃발을 세우고 싶다는 열망을 버리지 못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 보면 내가 머무를 어떤 곳을 만날거라는 기대, 아직도 품고 있다. 그래서 글을 쓴다. 글이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나를 데려가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