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뺨을 쓰다듬는다. 이렇게 뺨을 만졌을 때 아무것도 걸리는게 없이 매끈할 때의 기분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 오돌도돌한 것들이 손 끝에 느껴질 때 괴로움은 거울로 얼굴을 확인할 때보다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 스트레스였다. 30대 넘어서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피지가 잘 차는 피부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속에서 차는 피지들이 단단하게 뭉쳐서 배출되지 못하고 피부에 볼록한 산을 이루는 것은 20대에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는 그런 뾰루지들을 짜고 흉이 져도 며칠 후에는 그런 일이랑 있었나싶게 피부는 멀끔해져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좁쌀 여드름이 얼굴에 하나둘 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것을 일시적인 문제로 치부했다. 내 피부는 원래 이렇지 않고 지금은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든 호르몬의 영향이든 일시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곧 원래의 상태도 회복될꺼야. 그렇게 낙관했다. 그러나 좁쌀 여드름 중 일부가 화농성 여드름으로 진행되고 또 새로운 좁쌀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되어 순식간에 얼굴이 울긋불긋해지자 이것은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여드름에 좋다는 화장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여드름 피부, 여드름에 좋은 제품 이런 것을 검색해서 어떤 제품으로 효과를 봤다는 말만 있으면 그 제품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 제품들은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했다. 아주 약간 여드름이 완화되는가 싶다가도 하룻 밤 자고 나면 또 새로운 여드름이 생겨있고 나는 기대와 낙담을 반복했다.
결국은 백기를 듣고 피부가에 가서 압출과 레이저 정기 치료를 받게 되었다. 피부과에서는 정기적인 압출과 레이저로 피지선 관리, 흉터 관리를 꾸준히 해주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기에 전문가의 말대로 열심히 실행해 보았으나 내가 원하는 획기적인 변화는 없었다.
그런 시간이 몇 년간 반복되자 나는 나를 정의할 때 피부가 안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한번도 타인의 피부에 관심이 없었는데 누군가 내 얼굴을 응시하는 것이 두려웠고 타인의 결이 고운 피부를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어째서 나는 내 피부가 좋은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피부가 안 좋아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는 내 몸을 의식하게 되었다.
아무거나 쓰던 화장품의 성분을 살피게 되고 피부에 도움이 될만한 영양제를 찾게 되고 피부에 관한 유투브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관심은 피부 표면에서 내 몸 안의 장기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다. 위와 장이 좋지 않아서 그 문제가 크지 않을까, 밀가루와 배달 음식을 너무 좋아해서 식습관의 문제일까, 먼지가 많고 건조한 공간에서 오래 일해서 환경의 탓일까. 아니면 스트레스와 같은 심정인 문제?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마스크를 어디서든 써야하는 시기가 오면서 눈 아래쪽으로는 출근을 할 때도 화장을 하지않게 되었고 오랜 시행착오 끝에 내 피부와 그래도 가장 잘 맞는 화장품을 찾게되면서 내 피부 상태는 여드름이 생기기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최악의 시기는 면하게 되었다. 그 때 나는 피부를 시작으로 건강 전반에 대한 관심이 극에 달해서 식습관을 비롯해 많은 것을 바꿀 필요를 느꼈다. 음식에 대한 다큐를 찾아보고 비건과 자연 식물식 키토식 등 식생활의 다양한 형태에 관한 유튜브 영상과 전문 도서도 읽어보게 되었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해로운 것들을 차츰 줄이는 것으로 합의의 지점을 찾고 생활 습관 전반을 바꾸기 위해 분투했다. 독립하면서 꾸준히 배달 음식에 의존해왔는데 일주일치 장을 봐서 밥을 지어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 밥을 지어먹는 것은 너무 번거로운 일이었다. 메뉴를 선정하고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하는 그 과정이 모두 인내의 순간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몇 개 사서 밥만 해서 먹는 것이 시간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요리의 과정을 몸에 익히고 싶었다. 우당탕탕 재료를 다듬는데 한 시간 요리를 하는데 기본적으로 한시간이 소요되었다. 다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면 밥을 먹는데 드는 시간이 거의 두세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퇴직을 하고 집에서 번역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진행 중이었는데 12시부터 점심 시간을 그렇게 음식을 하는데 쏟아 부을 수 밖에 없었다. 번역가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요리를 본격적으로 배워서 적성에 맞는다면 요리 쪽으로 창업을 하고 싶기도 해서였다. 진지하게 시간을 들여서 만든 요리의 완성품에 기대를 가득 한 채 첫입을 맛봤는데 도무지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을때, 나는 시간을 버렸다는 절망감과 결국 요리에도 재능이라곤 없구나 하는 이른 자학을 했다. 처음에는 정말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로 유투브에서도 몇 시간이 걸리는 육수 만드는 법을 따라하거나 품이 많이 가는 요리들만 골라서 시도를 하곤 했다. 나는 야심가였고 야심가에겐 시작부터 그럴듯한 무엇인가가 항상 필요한 법이다. 이 사람은 진짜야 싶은 감이 오는 유투버들의 레시피를 따라 할 수록 또다시 재능이 의심스러웠고 이 요리의 과정이 지난하게 느껴졌다. 어떤 분야든 이미 잘하는 사람과 재야의 고수들이 차고 넘치는데 내가 넘볼 영역은 어디에도 없어보였다. 엉망진창이 된 주방을 볼 때는 더더욱이...그렇게 분투를 한 후에 나는 지금 월요일이 되면 일주일치 장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간단하고 건강한 요리를 해서 밥을 먹는다. 요리의 꿈은 살포시 접었지만 나 하나 건사해서 먹고 살릴 만한 능력은 익혔다.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하는 그 과정에서 소비되는 시간을 한 시간으로 줄였다. 더 이상 배달 음식에 의존하지 않고 예전에는 도무지 흥미가 가지 않던 냉장고 속 재료를 쓱쓱버무려 한끼를 해결할 수 있게 된 만족감은 생각보다 더 컸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만을 받아먹고 살던 나는 독립을 해서도 몇 년간은 음식을 조리하는 것 이상을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냉장고에 예전에는 먹을만한 것이 없네 싶었던 식재료들을 얼추 활용해서 생존에 필요한 음식들을 스스로 해먹을 줄 아는 어른이 된 것이다.
어른이 된 감각이었다. 어른이란 정신적 성숙이 아니라 스스로 내가 내 삶의 먹고 사는 부분을 책임지고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항상 속성이란 없었고 대가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일에 허송세월을 낭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과정, 내가 무엇인가 아주 작은 깨달음을 얻는데는 항상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다는 깨달음. 당연한 줄 알아서 너무 뻔하게 느껴졌던 격언들이 인생의 진리로 와닿는 순간들은 언제나 그런 타이밍이었고 그걸 알게 된 후부터는 어떤 일의 지난한 과정을 견디는 일이 덜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늦게 알게 된 깨달음이었지만 이제라도 알게되어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