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하지 않아도 됩니다

by 서진

시트콤이라는 장르를 좋아한다. 호흡이 잘 맞는 캐릭터들의 앙상블로 깔끔하게 구성된 20분짜리 시트콤의 에피소드를 한 편 보고 나면 지나친 감정 소모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극을 즐기고 담백하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기에 주로 식사 시간이나 일정과 일정 사이에 자투리 시간이 애매하게 남을 때 나는 좋아하는 시트콤을 틀어둔다.

특히 좋아하는 작품은 미국 시트콤 “오피스”와 “파크앤레크레이션”(두 시트콤은 제작진이 같다), 모던 패밀리, 우리나라 시트콤인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와 그 제작진이 만든 “똑바로 살아라”와 같은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성이 확고한 작품들이다.

20분 정도의 러닝타임의 시트콤은 초반에는 각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느라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극 자체가 자리 잡지 않은 것도 있지만 갑자기 훅 들어오는 캐릭터들의 강렬한 개성은 현실에서 준비 없이 낯선 타인을 소개받은 것처럼 시청자들에게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시즌이 거듭될수록 각각의 캐릭터들은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지고 그 인물들은 내 주위에 있는 누군가의 얼굴을 한 채 다가오기도 한다.

주인공에게 서사를 집중적으로 부여할 수밖에 없는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매 회차 에피소드에서 중심인물이 달라지는 시트콤을 시즌을 거듭하며 보다 보면 캐릭터 각각이 분명한 성격을 지닌 인물로 느껴지고 시트콤에서 그리는 세계가 어딘가 실제로 존재할 법한 한 가족의 삶의 모습, 한 회사의 조직 생활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인물의 개성으로 인해 유발된 상황들 그 개성적 인물들이 서로 엮이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그 캐릭터이기에“ 겪는 일들이 되고 회를 거듭할수록 캐릭터의 면면을 파악하게 된 우리들은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때론 뭉클한 감정을 느끼며 그 이야기의 일원이 되어간다. 시트콤의 묘미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새로 마주하게 하는 사람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시트콤 속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 캐릭터의 친근감을 느끼는 데는 가만히 지켜보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시트콤에서 그리는 캐릭터들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유니크한 개성을 지니고 있고 그 개성은 인간의 성격적인 부분에서 정수만을 모아뒀기에 초반에는 너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할 때 그 강한 개성이란 장점보다 단점이 두드러질수록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인 것 같다.

”오피스“의 마점장이라고 불리우는 캐릭터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노구 할배가 그 예시인데 그들은 정말이지 고약한 성미를 지니고 있다.

제지를 파는 회사의 지점장인 마이클은 아둔하고 고집스런 성격의 상사 그 자체를 보여준다. 노구 할배의 성미도 이에 못지않은데 대가족의 가장 어른인 이 할아버지는 친구들에게도 놀부 영감탱이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심술보가 덕지덕지 붙은 인물이다. 체통을 중요시 하지만 잘 삐지고 며느리는 은근히 차별하며 아들들과 서로 편을 먹고 한 명을 따돌리고 갖고 싶은 싶은 물건을 자식들이 사주지 않으면 온갖 방식으로 자식과 손자 손녀들에게 복수를 한다.

처음에 이들의 행동을 보면 저절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시트콤의 특성상 모든 상황에서 코믹적인 요소가 깔려있어 이들의 행동 자체의 심각성을 중화시켜주긴 하지만 이 캐릭터들은 정말 주변에 있을법한 짜증나는 인간 유형의 전형을 하고 있기에 실제로 이들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기도 한다. 주변의 캐릭터들도 다 저마다의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는데 아주 구두쇠거나 식탐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많거나 장난을 심하게 좋아하거나 이런 식이다.

이런 적당히를 할 줄 모르른 캐릭터들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요즘 떠오르는 신조어인 “뇌절”이란 말이 생각난다. 나도 최근에 알게 된 단어인데 “어떤 동일한 행동을 무한 반복으로 하는 것“을 뜻한단다. 적정선을 넘긴 행동의 반복을 뜻하는 말 같다. 이 시트콤의 등장인물들이야말로 그런 뇌절을 회차마다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그들은 그런 캐릭터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뇌절을 멈춘다면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성 자체도 희미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 단어를 몰랐을 때도 나는 sns를 통해 소통할 때 의식적으로 같은 얘기를 여러번 반복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sns에서 관계맺은 이웃들이 호응해주는 소재나 이야기라도 세 번 이상은 반복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질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깊이 파내고 드러낼수록 나는 내 의식에 저변에 깔려있는 생각들을 결국은 반복할 수 없음을 느꼈고 그 부분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없애려고 할수록 결과적으로 피상적인 이야기 밖에 적을 수 없음을 느꼈다.

어떤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반복해서 하는 말이 있는데 그 부분이 그 작가의 의식에 자리한 핵심 키워드고 신념인데 그것을 적당히만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뇌절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걸 보면 요즘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싫어하고 경계하는지 알 수 있다. “적당히 좀 해”라는 말로 대변되는, 눈치와 센스를 가지고 있는 이라면 스스로 멈출 줄 아는 미덕은 세련된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자질이 된 듯하다.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조차도 반응이 오는 유행어를 몇 번 쓰다보면 곧 “그만하지”라는 말을 시청자들에게 듣는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고 기억의 저장고에 깊숙이 각인시켜둔 시트콤의 캐릭터들만 보아도 그들은 적당히 하지 않는 인물들이다. 변할 수 없는 자신의 분명한 성격적 특성이나 말투나 행동은 최대한 숨기거나 자제하고 매번 새로 출시되는 신상 옷을 입고 신제품 음식을 먹는다고 인간의 개성은 확보되는 것일까. 같은 말과 행위를 반복하는 때로는 질린다고 느껴지는 그 특성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대변하는 개성이 아닌지. 주변을 살피는 행동과 절제하는 미덕도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서로에게 “적당히”를 외치는 것은 아닌지 적당히 하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시트콤 속 캐릭터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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