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이란

by 서진

네이버 사전에서 “각성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찾아본다. 첫 번째 뜻은 깨어 정신을 차리다

두 번째 뜻은 깨달아 알다. 나에게 “각성하다”라는 말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영화 속 주인공이 평이한 삶을 그럭저럭 살다가 어떤 큰 사건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는 다른 자신으로 변모하는 장면이다. 대부분 시골뜨기나 루저, 너드로 보이는 캐릭터들이 주변 사람들이 와 할만한 세련되고 매력적인 히어로, 진정한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아니면 큰 사건을 계기로 인간의 성격 자체가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악인에 가까웠던 인간이 정의로운 선택을 하는 장면은 내가 작품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각성의 순간이었다. 아무튼 각성을 한 뒤의 주인공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어느 시점이 되면 저렇게 한 시기의 나를 쿨하게 보내주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때가 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0대 후반인 지금에 와서도 나는 각성을 하지 못했다. 매일 매일 깨어 정신을 차리고, 깨달음을 얻는데 왜 나는 각성하지 못하는 것인가.

일을 하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업무적으로 해야 할 싫은 소리도 전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는 걸 알고 쉬는 동안 인간 관계에 대한 유투브도 보고 그럴 때 내 심리에 대해서도 한 발 자국 떨어져서 객관화해서 보고 이제는 안 그럴 자신이 있다고 제대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한번 더 인지하며 굳게 마음먹고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나는 새롭게 일을 시작한 첫 날부터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하나도 달라진 바가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여전히 불쾌한 얘기를 들어도 뭐라고 대꾸하지 못하고 그냥 넘겨버리며 속으로 이게 아닌데 느끼면서도 그런 흐름에 떠밀려가는 내가 있었다.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는 기시감이 드는 장면의 반복, 나는 나 자신이 달라지지 않으면 나를 둘러싼 상황이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또 그런 기회의 순간이 왔을 때 익숙한 내 패턴을 그대로 따름으로서 이전의 삶과 똑같은 답안지를 집어든 것이다.

슈퍼 히어로는 되지 못할지라도 똑 부러지게 나의 의견을 말하고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 자신에게 당당한 사람이 되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첫 번째로 운동을 시작했다. 2년째 헬스장을 꾸준히 나가고 탄츠 수업을 1년째 일주일에 한번씩 배우고 있다. 처음에는 할수록 나의 신체적인 한계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탄츠 수업을 같이 듣는 회원들이 선생님의 동작을 곧잘 따라하는 동안 나는 기본적인 방향부터 헷갈려서 오른발이 나가야 하는데 왼발이 나가고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순서가 어찌되는 건지 외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수업을 거의 따라가지 못한 날은 집에 오면서 몸치라는게 결국 머리가 나쁘다는 것과 연관있지 않은가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상위권은 아니더라도 중간은 해야 하는데 기본도 하지 못한다는 열등감을 느끼는게 너무 힘들었다. 몸으로 하는 것은 내가 못하는 일이 분명한데 이걸 극복해보겠다고 이렇게 매순간 절망을 느끼는 것보다 차라리 잘하는 부분에 집중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이번에는 인스타에 데일리 룩을 올리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다들 지향하는 바를 하나 잡고 출근룩을 꾸준히 올리거나 독서 감상문을 올리거나 에세이를 올리면 그것만 꾸준히 하는데 이것도 저것도 놓치기 싫은 나는 또 무리해서 하고 싶은 걸 한 공간에 우겨넣고 냅다 시작해버린 것이다.

운동도 관두지 않았다. 뭘 하다가 관둔 기억은 너무 많기 때문에 비록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이 울적하고 슬프기까지 하더라도 하루도 빼먹지 않고 꾸준히 하는 그 자체에만 집중했다. 이 모든 일을 매일매일 움켜지고 하다보면 각성의 순간이 오지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하면서.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갈수록 더 힘겹게 느껴졌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좋다고 하는 일로 단단히 발목 잡힌 기분. 나는 스스로 또 어리석은 선택을 해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집사부일체에 이적 편에서 이적씨는 콤플렉스가 둔한 운동 신경이라고 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잘하는 걸 떠나서 기본도 못하는 자신에게 위축되었다고. 그러다 깨달았다고 나도 남이보면 별로 노력하지 않는데 저런 재능이 있겠구나 하는 부분이 있겠구나 하고. 그래서 음악에 확 집중하게 되었다고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 재능에 집중하고 그걸 화초키우듯 키우게 되었다고 지속 가능한 일을 찾고 그것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운동을 할 때마다 이적씨의 말이 생각나고 지속가능한 일이 아닌 이 일에 매달리는게 의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몇 개월을 열심히 하고나니 어느 순간 거울을 보는데 내 어깨와 허리는 펴져 있었다. 척추 측만까지 완벽하게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도 괄목할만한 변화였다. 20kg 빈 바도 힘겹게 들어올리던 나는 이제는 60kg정도는 거뜬히 중량을 든다. 비록 운동은 나의 숨겨진 재능의 영역은 결코 아니었지만 이제는 운동하러 가는 길이 두렵거나 슬프지 않다.


이제는 각성이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매일매일 새롭게 정신을 차리고 수없이 많이 깨달으면 나는 조금 더 내가 원하는 나에 다가갈 수 있을까 확신할 수도 없다. 어렵게 만들었던 습관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나는 아직도 존재하고 그런 나는 내 안 깊은 곳에 짜져 있다가도 열심히 패달을 밟는 내가 조금만 지쳐서 멈추는 순간이 오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나를 장악한다.

그럼 필요 이상의 절망으로 절망을 절망해서 더 깊은 늪에 빠져버리는 역효과가 생긴다. 각성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는 삶 아닌가. 사실 히어로가 되지 못해도 시골뜨기 루저, 너드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도 있는데 왜 굳이 각성을 하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몸치이고 운동도 못하고 요리도 못하던 나도 충분히 잘 살아왔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것저것 조금씩 잘하게 되었다고 해도 근본적인 나는 여전히 변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인간 관계에서의 나는 어깨가 펴진만큼 당당해지지 못했다.

하지만 평생 각성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의 미묘한 나만 아는 달라짐을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꾸준히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똑같은 일이 결코 똑같지 않은 반복임을 그 과정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는 각성이다. 내가 깨달은 것 하나는 이것이다. 매일의 반복으로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를 살고 있다는 감각, 모두가 아는 나의 각성이 아니라 나만 아는 나의 작은 변화에도 충분히 효용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자각, 그렇게 나조차도 주의를 기울여야만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개미 눈물만큼의 전진을 이루어가며 나는 내 삶의 완성작의 귀퉁이 한 부분을 오늘도 슬쩍 칠해넣었다. 그것이면 되었다.

keyword
이전 06화알게되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