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는 그 공간의 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 맞는 성향의 사람과의 만남이 불편한 것처럼 나와 기질이 다른 공간에서 나는 움츠러들고 불편함을 느꼈다. 그 장소의 공기와 기운이 나를 압박하고 있다는 느낌, 그것은 그 공간에 들어설 때 본능적으로 느껴질 때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그 공간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감지하는 기류이기도 하다.
대체로 나는 사람의 밀도가 너무 높은 공간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그 공간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가깝지만 어떤 공간이 특정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공간이 가지는 힘이라고 본다. 그런 힘은 너무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내가 공간과 동등한 위치에서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압도되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런 느낌이 드는 공간을 인지하면 나는 스물스물 피하고 돌아서 그 공간을 에둘러 지나간다. 그런 기운에 맞서서 내 에너지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밀도가 적당한 공간은 가끔 혼자임이 못 견디게 울적하고 외롭다고 느낄 때 자주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생활 소음이 적당한 카페나 서점, 산책로 등이 그렇다. 너무 화려하지 않고 번지르르하게 치장되지 않은, 사람도 물건도 저마다의 여백을 갖춘 공간, 그런 모두가 자기만이 안전지대를 확보한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향유하며 장소를 공유하는 그 정도의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 그 안에 소속되어 있을 때 느끼는 한정된 소속감이 좋다. 내가 그 공간의 풍경이 되는 기분, 어떤 사진작가가 그 공간을 찍었을 때 나는 풍경 속의이름 없는 인물처럼 존재할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 더 그 공간이 좋아진다.
그 공간이 나를 받아들여 주고 나도 그 공간에 편안함을 느껴서 서로 은밀한 거래 이후에 나는 공간의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렇게 허락받은 나의 공간은
동네의 스타벅스 ㅇㅇ 지점의 창가 바 자리, 일주일에 네 다섯번은 가는 헬스장, 매일 데일리룩 사진을 찍는 동네 하천의 굴다리 밑, 한 달의 한번 뿌리 염색을 하러 가는 미용실 등이다.
내가 정착한 헬스장은 현란하고 화려한 조명과 최신의 기구와 귀가 터질듯 틀어놓은 bgm과 잘 빼입은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없다. 그렇지만 운동을 하기위해서 갖추어진 기구와 락커룸, 다양한 나이대의 운동을 하러 모여든 동네의 주민들이 있다. 그 속에서 운동을 할 때 온전히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다. 나는 처음부터 이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그 전에 번화가의 유명한 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센터를 둘러본 후 그 화려함에 기가 질릴대로 질린 상태라 이 소박한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들어서 등록한 후 꾸준히 다니게 되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공간은 내가 사려 깊게 선택해야 하는 것 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야 그 공간과 오래 함께할 수 있었다. 그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때는 안 맞는 공간에 나를 우겨넣기 위해 애를 썼다. 그것은 시간낭비였다.
아무 곳에서나 잘 적응하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낯을 가리는 데서 나아가 공간도 가리다니 나의 까다로움과 예민함에 스스로 진절머리를 치며 나 자신의 기질을 바꾸기 위해서 애썼다. 30이 다되어서 충동적으로 독립을 결정하고 내가 머물러야 할 공간을 내가 정하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내가 머물 장소는 내가 선택하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실제로 어떤 공간과 어떤 사람이 궁합이 있다고 믿는 치료사들도 있다고 한다. 나는 그런 기운이나 영적인 측면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게 하는 공간은 분명 따로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