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서 무엇인가를 하려면 챙겨야 하는 짐이 가방 가득히다. 우선 갤럭시 탭을 챙겨야 하고 블루투스 무선 키보드, 휴대폰과 휴대폰 충전기, 블루투스 이어폰, 노트와 펜, 텀블러, 데일리 룩을 언제 찍을 줄 모르니 삼각대와 리모컨까지 이 중 하나라도 챙기지 못하면 그날 외출은 화장실에서 큰일 보고 뒤를 덜 닦은 것처럼 찜찜한 상태로 해야 한다. 어쩌다 이렇게 수많은 기기의 노예가 되었나. 조금이라도 뺄 것이 없나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지만 이 물건들은 나에게 다 필요한 것들이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텀블러라도 뺄까 싶지만 없으면 몇 시간을 둬도 얼음이 그대로 살아있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순식간에 녹는 얼음으로 인한 맹탕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어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듯 하면서도 너무 중요한 문제이다.)
이렇게 다 챙겨서 뿌듯하게 카페에 왔는데 블루투스 키보드가 갑자기 불이 안 들어온다거나 갤럭시 탭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화면이 멈춰진 상태 그대로 꼼짝하지 않고 넘어가지 않을 때가 있다. 처음에는 에이 괜찮겠지 하고 이리저리 조작해보다가 해볼 수 있는 것을 다 해봤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진심으로 불안에 떨며 폰으로 네이버 지식인에 나와 비슷한 문제점을 겪은 사람들의 질문과 답을 검색해보기 시작한다. (네이버 지식인이 없었다면 이런 문제들은 도무지 어떻게 해결했을까)이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채. 본론도 들어가지 못하고 발단에서 막혀버린 건데 그 발단이라는 것이 기계의 세팅이니 나의 마음가짐이 문제가 아니라 기계의 컨디션에 의존해야 한다.
핸드폰이 갑자기 고장났을 때는 업무에 필요한 일들을 당장 해결하지 못해서 답답했고, 탭이 멈추거나 키보드가 먹히지 않을 때는 글을 쓸 수 없어서 심란했다. 글이야 종이에 펜만 있어도 충분히 쓸 수 있는 일인데 굳이 탭 메모장을 띄우고 연결된 키보드가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면 이것은 뭔가 중요도의 우선순위 자체가 바뀐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종이에 글을 쓰는 감각이 아니라 키보드를 일정하게 타닥타닥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감각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만약 둘 다 가지고 나왔더라면 오히려 갤럭시 탭과 무선 키보드를 연결해 둔 채 노트를 꺼내서 종이에 글을 쓰는 감각을 즐겼을 수도 있었을테다. 선택하는 즐거움을 맛보며, 그런데 기계가 갑자기 말을 안 들으면 그 기계를 살리는 일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다.
한마디로 1순위의 할 일.
최근에 집에 두고 쓰는 노트북이 나의 부주의로 커피와 함께 바닥으로 나뒹굴면서 커피의 잔해도 스며들고 노트북 자체도 충격으로 타격을 입어서 AS를 맡기는 일이 발생했는데 하루 이틀이면 될 줄 알았던 수리의 과정이 코로나로 인한 수입 부품 수급의 문제로 거의 한 달이 걸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었다. 거기다 비용도 예상치보다 몇 배는 더 들어갔다. 점점 길어지는 수리 기간을 감내하며 집에서 노트북 없는 생활을 하는데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냥 언젠가는 고쳐지겠지 라고 편하게 마음먹자 하고 마음을 비우고 생활했는데 아주 느리고 천천히 노트북 없는 생활의 답답함에서 벗어날 때 쯤이 되자 여봐란 듯이 내 노트북은 짜잔!하고 나의 품에 다시 돌아왔다.
나 없으니까 생각보다 더 힘들었지 하는 당당한 풍채를 한 채.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노트북을 켜고 큰 화면으로 보고 싶던 영상들을 보고 음악을 비지엠으로 틀어놓는 내 일상을 다시 회복하는 것만으로 만족감이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느껴졌다.
이 물건들은 내 일상의 루틴을 실행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내가 자리를 내어주기도 전에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고 만 것이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줄이고자 큰마음 먹고 핸드폰을 몇 시간 안 할 수는 있어도 핸드폰이 없다는 상상을 하면 아연해 지고 마는 나,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란 SF 영화에서 본 것처럼 인공지능으로 인간보다 똑똑해진 기계가 세계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는 그런 거창한 그림이 아니라 기계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계에 세뇌되어버린 지금의 우리 모습이 아닐까 하는 섬뜩한 상상. 핸드폰을 없애고 노트북이 아닌 노트에 한 글자씩 꾹꾹 눌러 글을 쓰던 시대로 나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게 우울을 떨쳐내려면 우울한 생각을 하지 말자라고 마음먹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해서 그 지분을 늘려서 균형을 맞춰주는 게 더 효과적이다는 말처럼 의식적인 불편함을 감수하는 행위를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다.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불안함에 시달리는 내 모습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